10 January 2010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설교 제목 : 회복과 부흥의 은혜
설교 본문 : 요한복음 21:15~23

그들이 아침 식사를 끝마치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예, 주여,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 양떼를 먹여라."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수께 대답했습니다. "예 주여,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 떼를 쳐라."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째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근심하며 말했습니다. "주여, 주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 떼를 먹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내게 말한다. 네가 젊어스는 스스로 옷 입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리고 너를 묶어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인지를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라!"
베드로가 돌아와서 보니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이 제자는 만찬에서 예수께 기대어 "주여, 주를 배반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제자를 보며 예수께 물었습니다.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원한다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이 말씀 때문에 이 제자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형제들 사이에 퍼졌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원한다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말씀하신 것뿐이었습니다.


<< 설교 요약>>

최근 전세계적으로 계속되고 있는 폭설 등의 기상 이변은 온난화라는 병을 앓고 있는 지구의 자가 치료 노력이라는 견해가 있다.
무생물인 자연 조차 자연 정화를 위해 움직이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된 우리 인간은 영적 건강의 이상을 자각하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는가?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은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의 30주년 표어는 "회복과 부흥" 이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점과 영적으로 병든 모습을 자각해야 한다.


오 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똑같은 질문을 세 번 반복하신다.

* 왜 예수님은 같은 질문을 세 번 반복하셨을까?
=> 베드로의 회복과 온전한 부흥을 위해!!

*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아직 주님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죄책감과 패배의식에서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 특히 베드로... 자신이 세 번이나 주님을 배반했었으니 예수님이 자신의 당신에 대한 사랑을 의심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3 : "배반의 숫자"에서 "사랑 고백의 숫자"로
-> 새벽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3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3이라는 숫자는 "배반의 숫자"로 각인되게 되었다.
->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자신을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을 똑같이 3번 하심으로써 3이라는 숫자에 얽힌 베드로의 트라우마를 해제시켜 주신 것이다.
-> 이제 3은 베드로에게 "사랑 고백의 숫자"로 대체되었다.

* 숯불 앞 : "배반의 장소"에서 "사랑 고백의 장소"로
->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곳이었던 숯불 앞은 이제 베드로가 주님에게 사랑을 고백한 장소가 되었다.

* 자녀들의 실수를 대할 때 예수님을 떠올리자
-> 자녀들이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그들은 이미 자기들이 잘못한 걸 알고 있다.
-> 그래서 위축되어 있고 구석에 움츠러들어있다.
-> 여기다 대고 "넌 그렇게 밖에 못하니?" 하는 식으로 질책하면, 아이의 반응은 "그래요 나 바보 멍청이에요, 됐어요?" 하는 식으로 대답하고 비뚤어질 가능성이 높다.
-> 그러니 따뜻한 말과 태도로 자녀를 회복시켜 줄 수 있도록 노력하자.

* 우리가 실패했을 때,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자.
->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야기 하셨듯이 우리에게도 "괜찮아, 나는 널 영원히 사랑해. 너도 날 사랑하니?" 라고 물어보실 것이다.
-> 실패의 기억에 괴로워하고 몸부림칠 때,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듣고.. 용기를 내어 고백하자.
-> 그러면 주님이 그 고백을 받으시고, 우리를 일으키시고, 새 힘을 주실 것이다!

*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에 사용된 동사의 차이점
-> 예수님의 첫 두 질문 : 아가파오? (아가페적 사랑 - 즉, 헌신적/희생적 사랑 - 의 의미)
-> 베드로의 첫 두 대답 : 필레오. (친구간의 깊은 우정 의미)
-> 예수님의 세 번째 질문 : 필레오? (예수님이 질문의 동사를 바꾸심)
-> 베드로의 세 번째 대답 : 필레오.
-> 이에 대한 성경 학자들의 해석이 분분하다.
-> 만약 베드로가 예전에 주님을 위해서라면 감옥이든 죽음이든 함께할 각오가 있었을 당시에(누가복음 22:33) 이 질문을 들었다면, 그는 당연히 "아가파오." 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 그러나 이제 베드로는 자신이 없어졌다...
-> 예수님은 왜 세 번째 질문에서 동사를 바꾸셨나? : 베드로의 현재 모습을 인정하심.. "거기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 베드로 역시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이 질문에 대해서 '필레오.'로 답함.

*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가? 그렇다. 하지만 사랑의 크기는 각각 다를 것이다.
-> 주님은 어떠한 크기의 사랑이라도 우리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실 것이다.
-> 주님은 "네가 지금 나에 대한 사랑이 얼마만큼이든 괜찮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라고 말씀해주실 것이다.
=> 다만, 베드로처럼 솔직히 자신의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 주님! 저는 주님을 사랑하지만 아직까지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며 따라갈 정도는 못됩니다. 하지만 제 마음 속에는 주님에 대한 사랑이 작게나마 있습니다!
=> 내 자신의 깨어짐과 실패를 인정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자!


<<내 삶에 적용>>

성경 속의 인물들 중 가장 애착과 동질감을 느끼는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베드로를 꼽는다.
베드로의 엉뚱함과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열정, 그리고 예수님이 끌려가실 때 예수님이 걱정되서 멀치감치 따라가지만 자신은 붙잡히기 싫어서 뜰에서 불을 쬐며 서성이다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나서 자신의 연약함에 통곡하는 모습... 내 모습과 너무 닮았다.

혼자 길을 가거나 운전하거나 앉아 있을 때... 내가 과거에 저지른 멍청하고 어이없는 실수가 자꾸 생각나서 너무 괴로울 때가 많다. 난 그 때 왜 그런 어이없는 말을 했을까?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왜 갑자기 당황하고 얼굴이 빨개지고 그랬을까? 등등 여러가지 생각이 튀어나오면서 공부하는 데 바빠야 할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는다. 그러면 반사적으로 내 입에서는 내 자신에 대한 욕이 튀어나온다. 그나마 최근들어 예수님 믿고 나서부터는 "주님, 살려주세요!" 하고 외치는 경우가 많아졌긴 하다. 하여튼 나는 과거의 실패에 발목 잡혀서 괴로워하고 있는 일이 그동안 많았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실패의 기억을 치료해주시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오늘 본문 말씀을 보고, 실패의 기억에 괴로울 때마다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설교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나를 지금 내 모습 그대로 인정해주시고 사랑해주신다는 걸 배웠다. 그런데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해주신다고 해서 그대로 남아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가 발전하는 걸 보고 싶어하신다는 걸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무튼 실패의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맴돌 때, 내 자신을 욕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이 모든 것은 사탄의 작업임을 인지하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아침을 차려주시고 사랑 고백을 이끌어 내시면서 회복을 시켜주셨던 사건을 떠올리면서 극복해야 겠다.

세상 기준은 단지 넘어지느냐 마느냐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 설교를 정리하는 현재 (2010년 6월 29일), 한국은 이미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16강까지는 올랐지만 16강전에서 탈락을 했고, 일본 역시 오늘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탈락을 했다. 사람들은 우리 한국팀에서 여러번 찬스를 놓치거나 수비 실수를 한 염기훈, 오범석, 이동국 선수 등을 요즘 말로 "가루가 되도록 까기" 바쁘다. 대표팀에서 그 선수들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나 역시도 우리 대표팀 선수들이 아까운 찬스를 놓칠 때 본능적으로 막 욕하게 되던데, 날마다 예수님의 성품을 점점 닮아가서 앞으로는 이렇게 결과만 보고 욕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세상의 호의는 16강, 8강, 4강을 진출해야만 얻을 수 있지만, 예수님의 호의는 비록 예선 탈락을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뛰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을 기쁘게 하는게 중요한가, 아니면 예수님을 기쁘게 하는게 중요한가?

명심하자. 모든 사람들이 주님께 받은 달란트가 다르듯이, 모든 사람들이 주님에 대해 가진 사랑의 크기는 다르다. 비록 출발선이 다르더라도 주님은 결과만 보고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과정과 우리의 마음, 열심히 노력한 걸 보시는 분이시다. 큰 실패를 한 다음에 예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섰다가도 나중에 또 큰 실패를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랑으로 다시 회복하고 일어나면 된다! 실패했다고 해서 내가 작게나마 가지고 있는 주님에 대한 사랑까지 송두리째 내던져 버리면 안되는 것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보시고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시고 받아주시는 주님, 저도 제 지금 현재의 모습을 직시하고 제가 어떻게 하면 발전할 수 있을지를 늘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살께요. 제게 은혜를 주셔서 더욱 부지런하게 살게 해주세요. 주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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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December 2009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설교 제목 : 아직 끝은 아닙니다!
설교 본문 : 룻기 1:1~6

사사들이 다스리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들어 유다 베들레헴의 어떤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잠시 모압 땅으로 가서 살았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다 베들레헴 출신의 에브랏 사람들인데 모압 땅에 가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거기에서 죽었고 나오미는 그 두 아들과 함께 남겨졌습니다. 나오미의 두 아들은 모압 여자와 결혼했는데 한 사람은 이름이 오르바, 또 한 사람은 룻이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에서 10년 정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말론도 기룐도 다 죽었고 나오미만 두 아들과 남편을 다 잃은 채 혼자 남게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압에 있던 나오미가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오셔서 양식을 공급해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두 며느리들과 함께 거기에서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습니다.


0. 여는 이야기

* O. Henry 의 마지막 잎새
-> 살다 보면 우리를 낙심케 하는 많은 일들을 만난다.
-> 그러다보면 우리는 좌절, 절망을 하게 되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삶을 포기하기까지 한다
-> 2009년의 마지막 주... 새해에 대한 기대보다는 불안감이 더 큰 경우도 많다 (마지막 잎새 처럼)

* 본문 중... 룻 가족의 비극적 상황
-> 얼핏 보면 모든 일이 우연히 벌어진 듯하지만, 사실은 이 모든 일이 잘못된 결정의 연속으로 인한 결과였다


1. 잘못된 결정 1 :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떠남

*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하나님이 주신 말씀
-> 당시는 사사시대 (여호수아 시대 바로 다음 시대)
-> 민수기 36:6~7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여호와께서 하신 명령은 이것이다. 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시집을 가기는 하되 자기들의 아버지의 가문 내에서만 시집을 가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의 유산은 한 지파에서 다른 지파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자손은 각자 자기 조상의 지파의 유산을 지켜야 한다.
-> 이 말씀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무슨일이 있어도 정착하고 지켜라" 라는 말씀이었다.
-> 땅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주님과의 약속을 무시하는 행위였다

* 하나님이 주신 땅을 버리고 떠난 엘리멜렉
-> 엘리멜렉은 여호와께 받은 땅에 흉년이 들자 그 땅을 버리고 모압으로 떠났다.
-> 엘리멜렉 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My God is the king" 인데 그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행동을 했다.
-> 몇 년 간의 흉년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모압 역시 이스라엘처럼 흉년이 들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모압은 100 k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 그래도 인간 심리라는 것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는 현 상황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 우리들 가운데도 고난이 닥칠 때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데 (직장 그만두거나 이사 가는 등등... 그리고 한 마디.. "예수 믿으면 다 잘될 줄 알았는데.. 에이씨..."), 엘리멜렉의 비극은 그가 있어야 할 이스라엘 땅을 버리고 모압으로 이주한 것에서 시작되었음을 기억하자!


2. 잘못된 결정 2 : 두 아들을 이방 여인들과 결혼시킴

* 나오미의 고난
->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이방 땅에서 키우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 나오미의 실수
-> 하지만 나오미는 여기서 또 실수를 했다...
-> 두 아들을 모압 여인들과 결혼시킨 것이다.
-> 두 며느리의 이름이 가진 뜻
오르바 : 암사슴
룻 : 붉은 장미
-> 이 이름들로 추측컨대 아마 이 두 여인은 무척 아름다운 여인들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예쁜 이름을 붙일만한 외모의 소유자였을 것임)
=> 그러나, 나오미는 이 며느리들이 신앙을 가지지 않은 이방 여인들이었음을 간과했다.

* 이름과 어울리는 삶?
-> 두 아들과 남편을 먼저 보내고 홀로 남은 나오미는 얼마나 큰 슬픔 속에서 가슴이 찢어졌을까?
->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 : 즐거움
-> 엘리멜렉(My God is the King) 이나 나오미(즐거움)나 이름의 뜻은 좋았는데 그들의 삶은 이름에 걸맞지 않았다...
-> 목사님 이름은 은혜 은, 빼어날 수 자를 쓰는데, 원래 수 자는 목숨 수 자였지만 중학교 때 지금의 한자로 바꾸셨다고 한다 (거의 돌아가실 뻔 하다가 살아난 뒤로...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살라는 의미로 이름을 바꾸셨다고 함)
-> 교회 이름들 중 "화평 교회" 라는 이름이 많은데, 이 교회들 중에서 그 이름과는 달리 서로 싸우고 다툼하는 교회도 상당히 있다...

* 우리의 또다른 이름 : 크리스천
-> 우리들은 각자 좋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더 중요한 이름이 있다.
-> 그 이름은 바로 "크리스천" :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 예수님이 생명의 값을 치르고 주신 이름
-> 이 이름의 의미를 지키며 살려면, 매 순간 올바른 결정을 하며 살아야 한다.

* 미국 22대 대통령 Stephen Cleveland 이야기
-> 어렸을 때부터 정직하기로 소문남 (옆집 닭이 자기네 집 마당에서 알을 낳자 그 알을 옆집에 돌려줌)
-> 그러나 청년 시절 나쁜 길로도 빠짐 (도박장 출입)
-> 어느 날, 도박장을 가면서 도박장 옆 교회 앞을 지나가다가 설교 제목을 우연히 봄
-> 설교 제목 : 죄의 삯은 사망
-> 이를 본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그 교회에 갔고, 그날 그는 거듭났다.
-> 그 때 같이 도박장에 가던 친구에게 교회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지만, 그 친구는 그의 권유를 거부하고 계속 도박장에 출입...
-> 수 십년 후... Cleveland 대통령이 취임하던 날, 그 친구는 감옥에서 신문으로 친구의 대통령 취임 소식을 접함.

*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 올바른 결정이 인생을 좌우한다!


3.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닙니다!

* 자식 잃는 부모의 심정
->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라고 한다...
-> 목사님의 부모님도 자식을 두 분이나(목사님 밑의 동생들) 잃으셨음...
-> 그 아픔을 신앙으로 겨우 극복하셨다고 한다...

* 슬픈 일의 연속으로 가슴이 찢어질대로 찢어진 나오미...
=>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닙니다!
-> 본문 6절 :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절망에 널브러져 있던 나오미에게 고향땅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옴
=> 룻기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됨!

* 포기하지 맙시다
-> 올 한해는 세계적 경제 불황으로 이민자나 유학생이나 모두 힘든 한 해를 보냈다
-> 좌절, 절망, 낙심... 그러나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니 포기하지 말자!
-> KFC 창립자 Colonel Sanders : 사업 실패 등 많은 고난을 겪다가 65세에 KFC 창립 후 크게 성공
=> 하나님께는, 내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나, 무엇을 갖고 있나가 중요하지 않다. 그냥 열심히 하면 되는 거다.


4. 맺는 이야기

* 다시 O. Henry 의 마지막 잎새
-> 나무에 끝까지 남아 있던 잎새는 사실 아랫 층에 살던 노인 화가가 그린 것이었다.
-> 그런데 이 노인 화가는 비바람 속에서 벽에 그림을 그리느라 폐렴을 얻어서 죽음..
=>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마지막 잎새를 쥐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데 우리가 왜 포기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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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December 2009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설교 제목 : 하나님의 열심
설교 본문 : 이사야 9:6~7

한 아이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얻었다. 그의 어깨에는 주권이 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불릴 것이다. 그분의 넘치는 주권과 평화는 다윗의 보좌와 그의 왕국 위에 끝없이 펼쳐질 것이다. 지금부터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견고히 세우실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정이 이것을 이루실 것이다.


0. 여는 이야기

* 목사님 댁이 있는 마을의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
-> 목사님 댁 부근에는 길을 사이에 두고 길 위로 4집, 길 아래로 4집이 있다 (목사님 댁은 길 아래에 위치)
-> 길 위로 있는 집 4집은 모두 크리스마스를 맞아 화려하게 장식을 했지만, 길 아래쪽의 4집은 모두 크리스마스 장식을 안했다.
-> 길 위의 집들 중 특히 목사님 댁 바로 맞은 편의 집은 가장 화려하게 장식을 했다 (루돌프 사슴, 천사들 등등)
-> 그러자 그 옆집도 질세라 큰 전나무를 사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다.
-> 그런데 이 두 집들은 예수님을 안믿는 집들이라고 한다 (주일날 교회 안 가고 놀러다님)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매년 크리스마스 장식을 열심히 한다고 함
=> 그들은 도대체 무엇때문에 크리스마스 장식에 저리도 열심인가? 저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어떤 의미일까?

* 오늘날 이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열심을 낸다
-> 사업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즈니스 대목, 청춘 남녀들에게는 사랑의 추억을 만드는 날, 자식을 타지에 보낸 부모들은 이 연휴를 이용해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
-> 오늘날 크리스마스는 사람들이 열심을 내는 날이 되었다.
=> 그러나, 원래 크리스마스는 "하나님이 열심을 내는 날(The day of the zeal of the lord)"이다!
=> 오늘날 성탄절에 보이는 사람들의 세속적 행태는 성탄절이 하나님의 열심의 날임을 잊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성탄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열심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나?


1. 하나님의 열심 : 복음을 위한 열심

* 오프라 윈프리쇼에 출연했던 시각 장애인 사업가 톰 설리번
-> 그는 어린 나이에 사고로 실명하고 크게 낙심해서 절망의 나날을 보냈다.
-> 주변 친구들이 아무도 놀아주지 않아서 더욱 참담한 나날을 겪었다.
-> 그러던 어느날... 옆집 아이가 그에게 다가와서 "want to play?" 라며 그에게 같이 놀자고 말을 건넸다고 한다.
=& gt; 이 세 마디의 말(want to play?) 이 그의 삶을 바꿨다 : 이 말이야 말로 앞을 못보는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가치를 지닌 인간임을 인정해주는 말이었던 것이다.
=> 그는 이 말에서 크나큰 힘을 얻고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영혼의 눈을 떴다고 한다.
=> 이 말이야 말로 복음의 핵심을 명료하게 드러낸 것이 아닌가?

* 복음의 핵심을 간단명료하게 드러낸 말 : "Want to play?"
=> 복음은, 흑암속에서 방황하고 절망 속에서 널부러진 우리 인간을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나와 같이 놀래?", "천국에서 같이 살래?" 라고 말씀하시며 손을 내밀어주신 사건이다.
->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 요한1서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자기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생명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습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위해 그분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 복음의 핵심 :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그 독생자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독생자를 희생시키신 이유
->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게 있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땅에 당신의 독생자를 보내시는 번거로움과 부끄러움을 감수하셨다.
->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대충대충, 불완전하게 하신 게 아니라 완전하게 하시고 싶으셨기 때문이다.
=> 만약 우리의 죄값에 대한 책임을 덮어두고 우리를 구원하셨다면, 이는 두고두고 사탄이 우리를 트집잡을 빌미를 제공했을 것이다.
(ex. 사탄이 우리에게 계속해서 이렇게 속삭였을 수도 있다. "너는 아직 네 죄값도 치루지 않았는데 구원 받았다는 게 말이나 되냐?")

*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시기심
-> 이사야의 표현
->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사탄의 세력이나 우상에게 뺏기고 싶어하지 않으신다.


2. 하나님의 열심 :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친히 오신 열심

* 포인세티아 :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꽃
-> 지금 강단을 장식하고 있는 꽃들
-> 빨간 잎(포엽)들은 사실 꽃이 아니고 그 빨간 잎들 사이에 작은 꽃이 있다.

* 왜 포인세티아가 크리스마스의 대표적인 꽃이 되었나?
-> 두 가지 설이 있다.
-> 1) 멕시코 소녀 루시다 이야기
(성탄절에 온 마을 사람들이 주님께 선물을 바치는데 루시다는 바칠 게 없어서 슬피 울었는데 그 눈물이 떨어진 땅에 빨간 꽃들이 피어나서 나중에 이 꽃들을 바쳤다는 이야기)
-> 2) 빨간 포엽은 주님의 피(희생)를 상징하기 때문
-> 포인세티아의 원산지는 멕시코이다
-> 1830년 멕시코로 간 미국 외교관 조엘 로버츠 포인세트 박사가 이 꽃을 발견하고 미국으로 도입했다
-> 이 포인세트 박사의 이름을 따서 이 꽃의 영어 이름이 포인세티아가 된 것이다.

* 목사님이 생각하는 포인세티아가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꽃인 이유
-> 포인세티아의 원산지인 멕시코는 더운 나라다.
-> 이렇게 더운 환경에서 잘 자라는 포인세티아가 미국의 추운 겨울 날씨에서 꽃을 피우려면 온실 속에서 수십일간 빛을 차단한 채 온갖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지 된다고 한다.
-> 원산지인 멕시코에서 자랐으면 별 어려움 없이 꽃을 잘 피울 수 있었을텐데, 전혀 다른, 힘든 환경 속에서 꽃을 피우기 위해 밀폐된 어둠 속에서 모진 인내 끝에 아름다운 꽃을 피워서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다.
=> 우리 주님께서는 하늘의 영광스런 보좌를 버리시고, 죄악으로 숨막히는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고 우리를 자신의 백성 삼으신 것 : 바로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본질이다.
-> 포인세티아의 개화 과정과 예수님의 고난 후 영광을 얻으시는 과정은 이렇게 비슷하다.


3. 하나님의 열심 : 임마누엘의 열심

* 우리의 평생동안 겪게 되는 고난
->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당장 모든 고생이 끝나고 행복만이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끝없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 그러나, 그 어떤 아픔과 고난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지는 못한다!
=> 우리는 삶의 모든 고난을,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게 될 것이다!
=> 하나님의 열심은 임마누엘("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의 열심이기 때문!

* 임마누엘의 하나님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의 폭풍우 속에서 절망하고 있더라도 우리를 고난에서 건져내지 않으시고 그냥 두실 수도 있다.
->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고난 가운데 우리와 임마누엘로 함께 하실 것이다
-> 그래서 그 고난에 매몰되지 않도록 우리를 지키실 것이다!
=> 우리는 약하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계신 강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실 것이다!

*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 자기 백성들을 위해 잠시도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있기 때문
-> 이 성탄의 계절, 다른 모든 사람들은 기뻐하고 행복하게 지내지만 남들처럼 기뻐할 수 없는 아픔이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은 하나님의 열심이 그 눈물을 닦아줄 것입니다.

* 절망을 소망으로 바꾼 크리스마스!
-> 깊은 절망에 빠져있습니까? 절망은 크리스마스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깊은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신 하나님의 열심이 빛나는 날이기 때문!
=> 우리를 위해 지금도 열심을 내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다시금 소망을 가지고 일어나자!


4. 맺는 이야기

*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 카드 이야기
-> 올해도 많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 받았지만, 그 중 특별한 크리스마스 카드가 배달되었다
-> 감옥에 있는 두 중국 분들이 직접 만든 카드...
-> 우연히 다른 분의 소개로 알게된 분들인데, 두 분들 중 나이 많은 분은 독실한 불교신자로, 14년간 감옥에 있으면서 면회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고 한다.
-> 그러던 중 나이 어린 다른 분이 그 분을 사랑으로 대하며 전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두 분은 직접 카드에 그림을 그려서 목사님께 보내셨는데, 교회를 수채화로 그리셨다고 한다.
-> 목사님은 이 분들을 보며 하나님의 열심을 느끼셨다
-> 14년간 절망 속에 헤매던 길 잃은 양을 크리스천을 만나게 해서 목사님과 교회 공동체와 교류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열심!
=> 다시 한 번, 우리는 성탄절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하나님이 열심을 내신 날임을 기억해야 한다!

* 하나님의 열심을 본받은 우리의 열심
-> 아무쪼록 성탄절에 세상 분위기에 휩쓸려서 파티하고 웃고 떠들고 놀다가 나중에 이 모든게 지나가면 마음속에 허무함이 엄습하는 걸 겪지 말자
=> 그 대신, 우리를 향한 임마누엘의 열심을 내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날로 성탄절을 보내고, 하나님의 열심을 본받아 아직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 우리도 열심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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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앙돌이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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