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October 2009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설교 제목 : 희롱당하시는 왕
설교 본문 : 마태복음 27:27 ~ 44


0. 여는 이야기

*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 주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사실적으로 묘사
-> 고난을 당하는 내내 무기력하게 고통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 자신을 향한 온갖 폭력과 모욕에 아무런 대응을 안하셨다.
->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마음 : 저 야비한 무리들을 온갖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예수님이 그냥 확 혼내주셨으면 얼마나 속시원할까?
-> 하지만 주님은 이러한 상황을 자처하셨다.

* "희롱당하시는 왕"
-> 굉장히 모순된 말/상황 (왕은 희롱당하는 존재가 아니다)
-> 우리 주님이 이러한 모순된 상황의 주인공이 되기를 자처하셨다면, 그 안에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1. 빌라도의 관정에서 골고다까지

* 십자가 처형
-> 원래 동방 국가들의 처형 방식으로, 로마가 이를 수용
-> 군중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는 공개 처형
-> 건강한 사람은 10일동안 십자가에 매달려서 살아있는 경우도 있었다
-> 보통은 (처형당하는 사람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 처형시간을 줄이기 위해 몽둥이질, 채찍질을 먼저 하고 십자가에 매달았다.

*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과 모욕
->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에게 모진 채찍질을 가하고 자주색 옷(왕의 옷)과 가시 면류관을 입힌 후 갈대(왕의 홀)를 손에 쥐어줌
-> 그리고 나서 "유대인의 왕 만세!" 라고 외침
-> 그런 직후 예수님께 침을 뱉고 갈대를 뺏어서 머리를 침 : 왕권을 빼앗고 "우리가 왕이다!" 라고 선언하는 것

* 빌라도가 예수님께 한 선의의 행동들
-> 채찍질
물론 채찍질 자체도 매우 고통스럽지만, 십자가 처형 시간을 줄이기 위한 배려였다
-> 쓸개 탄 포도주 제공
쓸개 탄 포도주는 당시 마취제로 쓰였으며, 예수님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제공되었으나,
예수님은 이를 마시기를 거부하셨다 (고통을 온전히 당하시기 위함)
-> "유대인의 왕" 팻말
예수님을 조롱하기 보다는 예수님을 고발한 유대 제사장들에 대한 반발과 조롱의 의미로 해석됨

=> 그러나 이러한 빌라도의 배려가 예수님을 기쁘게 하거나 예수님의 사명 수행에 도움이 되었나? 그렇지 않다.

* 우리 교회 근처의 한 미국 교회 이야기
-> 성도수는 1000 여명인데, 주일 출석 교인 수는 약 200 여명
-> 주일에 출석하지 않는 교인 800 여명은 주일에 출석하지는 않아도 주일마다 헌금을 송금한다
-> 그들 중 일부는 죽을 때 재산을 교회에 기부하기도 한다
->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런 형식적 배려가 아니다
-> 예수님은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것" 을 원하신다

* 조지 부시
-> 미국 복음주의 교회들의 지지를 받고 대통령에 당선됨
-> 이러한 지지에 대한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조지 부시는 복음주의 교회와 관련 단체들에 대한 물질적 지원을 확대함
-> 하지만 그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들 중 한 명으로 꼽힐 정도로 평가를 받음
-> 그가 교회의 지지에 대해 보답했어야 하는 방식은 진정한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섬기는 리더로서의 의무를 다 하는 것이었지, 교회들에 대한 물질적 지원을 확대하는 것으로 자신의 보답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 예수님의 좌편과 우편 자리
->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기 전에는, 제자들은 누가 예수님의 좌편, 우편에 자리할 것인지를 놓고 다툼을 벌였다.
-> 하지만 예수님이 체포되어 고난을 당하시자 그들은 모두 도망치고, 결국 예수님의 좌편과 우편의 자리에는 같이 십자가 처형을 당한 강도들이 매달렸다.

=> 예수님의 제자들은 영광의 자리의 좌우편은 원했지만, 고난의 자리의 좌우편은 외면했다.
=> 그들은 고난이 없이는 영광도 없음을, 십자가 없이는 부활도 없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2. 희롱하는 무리들 /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예수님

* 예수님을 향한 무리들의 조롱
-> 본문 40절
말했습니다. "성전을 헐고 3일 만에 짓겠다던 사람아! 네 자신이나 구원해 봐라! 어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한 번 내려와 봐라!"
-> 42~43절
말했습니다. "남을 구원한다더니 정작 자기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는군!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니 어디 한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지.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어 주겠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니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신다면 지금이라도 그를 당장 구원하시겠지. 자기 스스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고 말했었다."
-> 누가복음 23:39
십자가에 달린 죄수 중 하나가 예수를 모독하며 말했습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그러면 너와 우리를 구원해 보아라!"

=> 조롱한 무리들의 핵심 메시지 :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 이 메시지는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시는 장면과 본질적으로 같다.

* 광야에서 예수님이 사탄에게 당한 첫 번째 시험
-> 40일을 금식하여 배고프신 예수님을 향한 사탄의 유혹 (마태복음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다가와 말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 이 말은 결국 "네가 가진 지위와 능력을 네 편리를 위해 사용해라!" 라는 말임.
->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 (마태복음 4:4)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됐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 이 말씀은 "내가 아무래 배고파도 하나님이 정하신 순리를 바꾸지는 않겠다!" 라고 말씀하신 것임. (내 욕구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욱 중요하다)

* 광야에서 예수님이 사탄에게 당한 두 번째 시험
->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명하라는 사탄의 시험 (마태복음 4:6)
마귀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내려 보시오. 성경에 기록됐소. '하나님이 너를 위해 천사들에게 명령하실 것이다. 그러면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붙잡아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할 것이다.'"
=> 사탄의 시험이 더욱 교활해짐 (이번에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
=> 이 말은 결국 "세상 모든 사람들 앞에서 커다란 기적을 행하면 그걸 본 사람들이 너를 구주로 인정하고, 너의 구원 사역이 더 쉬워질 것이 아니냐?" 라는 말임.
=>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 (마태복음 4:7)
예수께서 마귀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성경에 또 기록됐다. '주 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 이 말씀은 "아무리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된다" 라고 말씀하신 것임.

*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이 다 "성경적"인 것은 아니다!
-> "성경적"인 말씀 :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말씀
-> 마가복음 16:17~18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를 것이다. 그들은 내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새 방언으로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를 받지 않으며 아픈 사람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 이 모든 것이 주님만 믿으면 다 가능한 일인가? -> 가능할 수도,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 바울은 복음을 전하러 다니는 여행 도중 독사에 물렸어도 살았다.
-> 그렇다고 우리도 독사를 구해 와서 그 독사한테 팔을 내밀어서 일부러 물리면 우리도 아무 탈 없이 무사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러면 우리는 바로 죽을 확률이 매우 높다.
-> 그렇다면 바울은 왜 독사한테 물리고도 안 죽었나? -> 주님의 뜻이 그러하셨기 때문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적을 보여주셔서 그들을 믿게 하시려고 주님이 인도하심)
=> 바울은 절대로 "예수님이 우리는 독사한테 물려도 안죽는다고 얘기하셨으니 어디 한 번 독사한테 일부러 물려봐야지!" 하고 예수님을 시험한 게 아니다!
=> 지금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바로 "성경적"인 것이다!

* 사탄의 재도전
-> 사탄은 몇년 전 실패한 자신의 시험을 예수님의 사역이 절정에 달한 십자가 처형장에서 다시 시도함
=>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면 사탄이 우리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기 때문!

* 조롱하는 사람들
-> 그들은 진정한 구원자는 위험에 빠진 자신을 구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자임을 전혀 알지 못했다.
-> 진정한 구원자의 역할 (이사야 53:8)
그는 강제로 끌려가 재판을 받고 처형을 받았지만 땅에서 그의 생명이 끊어지는 것을 보고서 그가 당하는 것은 내 백성의 죄악 때문이라고 중얼거리기라도 한 사람이 우리 세대 가운데 누가 있느냐?

* 2천년 전 골고다 언덕... 인간들의 처절한 무지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홀로 빛나고 있었다!


3. 맺는 말

* 독일의 본 회퍼 목사 이야기
-> 나치가 위세를 떨칠 시절 독일에서 목회를 하심
-> 나치의 교회 핍박이 절정에 달한 즈음에 미국에 강연차 여행을 오심
-> 미국의 많은 성도들이 본 회퍼 목사님의 미국 망명을 권유했으나, 그는 자신의 사명이 독일에 있음을 믿고 독일로 돌아감
-> 나중에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하였으나 발각되어 1945년 4월 8일에 집단 교수형을 당함
=> 그가 죽기 전 옥중에서 남긴 말 :
명령에 따라 고난을 당하는 것은 자발적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보다 쉽다.
여럿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홀로 고난을 당하는 것보다 쉽다.
육체적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보다 쉽다.
나는 명령에 따라, 여럿이, 육체적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이지만,
예수님은 자발적으로, 홀로, 정신적으로 고난을 받으셨다.
=> 우리들 중 아무나 만약 예수님이 가지신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십자가의 고통을 당했다면,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십자가에서 내려왔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보다 우리를 더욱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셨다.
=> 과연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우리 자신의 무엇을 버리고 내려놓는가?

* 사도 바울의 "내려놓음" 의 정신
-> 고린도 전서 9:19~22
내가 모든 사람에 대해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됐습니다. 이는 내가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유대 사람들에게 내가 유대 사람처럼 된 것은 유대 사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나 자신이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만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율법 아래 있는 사람처럼 된 것은 그들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연약한 사람들에게 내가 연약한 사람처럼 된 것은 연약한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어떻게든지 몇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 사도 바울은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려놓고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줬다
=>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고 한 사람에게라도 더 다가가기 위해 우리가 버려야할 것은 무엇인가?
=>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구원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기 위해 버려야할 것들, 포기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 온갖 극심한 고통을 당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
=> 예수님은 그 모든 고통을 당하지 않으셔야 할 분인데 우리를 위해서 그 모든 고통을 자발적으로 당하셨다.
=>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끝까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않으셨다!



Posted by 앙돌이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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