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January 2010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설교 제목 : 회복과 부흥의 은혜
설교 본문 : 요한복음 21:15~23

그들이 아침 식사를 끝마치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예, 주여,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 양떼를 먹여라."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수께 대답했습니다. "예 주여,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 떼를 쳐라."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째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근심하며 말했습니다. "주여, 주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 떼를 먹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내게 말한다. 네가 젊어스는 스스로 옷 입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리고 너를 묶어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인지를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라!"
베드로가 돌아와서 보니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이 제자는 만찬에서 예수께 기대어 "주여, 주를 배반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제자를 보며 예수께 물었습니다.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원한다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이 말씀 때문에 이 제자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형제들 사이에 퍼졌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원한다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말씀하신 것뿐이었습니다.


<< 설교 요약>>

최근 전세계적으로 계속되고 있는 폭설 등의 기상 이변은 온난화라는 병을 앓고 있는 지구의 자가 치료 노력이라는 견해가 있다.
무생물인 자연 조차 자연 정화를 위해 움직이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된 우리 인간은 영적 건강의 이상을 자각하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는가?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은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의 30주년 표어는 "회복과 부흥" 이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점과 영적으로 병든 모습을 자각해야 한다.


오 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똑같은 질문을 세 번 반복하신다.

* 왜 예수님은 같은 질문을 세 번 반복하셨을까?
=> 베드로의 회복과 온전한 부흥을 위해!!

*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아직 주님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죄책감과 패배의식에서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 특히 베드로... 자신이 세 번이나 주님을 배반했었으니 예수님이 자신의 당신에 대한 사랑을 의심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3 : "배반의 숫자"에서 "사랑 고백의 숫자"로
-> 새벽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3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3이라는 숫자는 "배반의 숫자"로 각인되게 되었다.
->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자신을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을 똑같이 3번 하심으로써 3이라는 숫자에 얽힌 베드로의 트라우마를 해제시켜 주신 것이다.
-> 이제 3은 베드로에게 "사랑 고백의 숫자"로 대체되었다.

* 숯불 앞 : "배반의 장소"에서 "사랑 고백의 장소"로
->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곳이었던 숯불 앞은 이제 베드로가 주님에게 사랑을 고백한 장소가 되었다.

* 자녀들의 실수를 대할 때 예수님을 떠올리자
-> 자녀들이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그들은 이미 자기들이 잘못한 걸 알고 있다.
-> 그래서 위축되어 있고 구석에 움츠러들어있다.
-> 여기다 대고 "넌 그렇게 밖에 못하니?" 하는 식으로 질책하면, 아이의 반응은 "그래요 나 바보 멍청이에요, 됐어요?" 하는 식으로 대답하고 비뚤어질 가능성이 높다.
-> 그러니 따뜻한 말과 태도로 자녀를 회복시켜 줄 수 있도록 노력하자.

* 우리가 실패했을 때,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자.
->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야기 하셨듯이 우리에게도 "괜찮아, 나는 널 영원히 사랑해. 너도 날 사랑하니?" 라고 물어보실 것이다.
-> 실패의 기억에 괴로워하고 몸부림칠 때,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듣고.. 용기를 내어 고백하자.
-> 그러면 주님이 그 고백을 받으시고, 우리를 일으키시고, 새 힘을 주실 것이다!

*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에 사용된 동사의 차이점
-> 예수님의 첫 두 질문 : 아가파오? (아가페적 사랑 - 즉, 헌신적/희생적 사랑 - 의 의미)
-> 베드로의 첫 두 대답 : 필레오. (친구간의 깊은 우정 의미)
-> 예수님의 세 번째 질문 : 필레오? (예수님이 질문의 동사를 바꾸심)
-> 베드로의 세 번째 대답 : 필레오.
-> 이에 대한 성경 학자들의 해석이 분분하다.
-> 만약 베드로가 예전에 주님을 위해서라면 감옥이든 죽음이든 함께할 각오가 있었을 당시에(누가복음 22:33) 이 질문을 들었다면, 그는 당연히 "아가파오." 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 그러나 이제 베드로는 자신이 없어졌다...
-> 예수님은 왜 세 번째 질문에서 동사를 바꾸셨나? : 베드로의 현재 모습을 인정하심.. "거기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 베드로 역시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이 질문에 대해서 '필레오.'로 답함.

*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가? 그렇다. 하지만 사랑의 크기는 각각 다를 것이다.
-> 주님은 어떠한 크기의 사랑이라도 우리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실 것이다.
-> 주님은 "네가 지금 나에 대한 사랑이 얼마만큼이든 괜찮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라고 말씀해주실 것이다.
=> 다만, 베드로처럼 솔직히 자신의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 주님! 저는 주님을 사랑하지만 아직까지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며 따라갈 정도는 못됩니다. 하지만 제 마음 속에는 주님에 대한 사랑이 작게나마 있습니다!
=> 내 자신의 깨어짐과 실패를 인정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자!


<<내 삶에 적용>>

성경 속의 인물들 중 가장 애착과 동질감을 느끼는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베드로를 꼽는다.
베드로의 엉뚱함과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열정, 그리고 예수님이 끌려가실 때 예수님이 걱정되서 멀치감치 따라가지만 자신은 붙잡히기 싫어서 뜰에서 불을 쬐며 서성이다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나서 자신의 연약함에 통곡하는 모습... 내 모습과 너무 닮았다.

혼자 길을 가거나 운전하거나 앉아 있을 때... 내가 과거에 저지른 멍청하고 어이없는 실수가 자꾸 생각나서 너무 괴로울 때가 많다. 난 그 때 왜 그런 어이없는 말을 했을까?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왜 갑자기 당황하고 얼굴이 빨개지고 그랬을까? 등등 여러가지 생각이 튀어나오면서 공부하는 데 바빠야 할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는다. 그러면 반사적으로 내 입에서는 내 자신에 대한 욕이 튀어나온다. 그나마 최근들어 예수님 믿고 나서부터는 "주님, 살려주세요!" 하고 외치는 경우가 많아졌긴 하다. 하여튼 나는 과거의 실패에 발목 잡혀서 괴로워하고 있는 일이 그동안 많았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실패의 기억을 치료해주시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오늘 본문 말씀을 보고, 실패의 기억에 괴로울 때마다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설교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나를 지금 내 모습 그대로 인정해주시고 사랑해주신다는 걸 배웠다. 그런데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해주신다고 해서 그대로 남아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가 발전하는 걸 보고 싶어하신다는 걸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무튼 실패의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맴돌 때, 내 자신을 욕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이 모든 것은 사탄의 작업임을 인지하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아침을 차려주시고 사랑 고백을 이끌어 내시면서 회복을 시켜주셨던 사건을 떠올리면서 극복해야 겠다.

세상 기준은 단지 넘어지느냐 마느냐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 설교를 정리하는 현재 (2010년 6월 29일), 한국은 이미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16강까지는 올랐지만 16강전에서 탈락을 했고, 일본 역시 오늘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탈락을 했다. 사람들은 우리 한국팀에서 여러번 찬스를 놓치거나 수비 실수를 한 염기훈, 오범석, 이동국 선수 등을 요즘 말로 "가루가 되도록 까기" 바쁘다. 대표팀에서 그 선수들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나 역시도 우리 대표팀 선수들이 아까운 찬스를 놓칠 때 본능적으로 막 욕하게 되던데, 날마다 예수님의 성품을 점점 닮아가서 앞으로는 이렇게 결과만 보고 욕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세상의 호의는 16강, 8강, 4강을 진출해야만 얻을 수 있지만, 예수님의 호의는 비록 예선 탈락을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뛰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을 기쁘게 하는게 중요한가, 아니면 예수님을 기쁘게 하는게 중요한가?

명심하자. 모든 사람들이 주님께 받은 달란트가 다르듯이, 모든 사람들이 주님에 대해 가진 사랑의 크기는 다르다. 비록 출발선이 다르더라도 주님은 결과만 보고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과정과 우리의 마음, 열심히 노력한 걸 보시는 분이시다. 큰 실패를 한 다음에 예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섰다가도 나중에 또 큰 실패를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랑으로 다시 회복하고 일어나면 된다! 실패했다고 해서 내가 작게나마 가지고 있는 주님에 대한 사랑까지 송두리째 내던져 버리면 안되는 것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보시고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시고 받아주시는 주님, 저도 제 지금 현재의 모습을 직시하고 제가 어떻게 하면 발전할 수 있을지를 늘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살께요. 제게 은혜를 주셔서 더욱 부지런하게 살게 해주세요. 주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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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앙돌이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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