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November 2009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설교 제목 :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설교 본문 : 마태복음 28:1 ~ 10


0. 여는 이야기

* 목사님의 부러진 안경
-> 오늘 아침에 안경 다리가 부러져서 스카치테이프로 감으셨음
-> 여벌 안경이 교회 서랍에 있는 줄 알고 나오셨지만 막상 나와보니 없었다..
-> 점점 나이가 들수록 이렇게 점점 기억이 깜박깜박해지는 일들이 많아짐
-> 교인 이름, 전화번호 등등이 생각 안 날 때도 많으심
-> 다른 사람과 장시간 이야기를 한 다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나기도 하심!
=>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큰 일이 우리 삶에 자주 일어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 크리스천이 중대한 일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 그러나 하나님 말씀이 생각이 안나서 세상의 기준과 가치관,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 고난의 상황에서 하나님 말씀이 생각 안나면 고통과 절망 밖에 없다.


1. 부활 예고를 잊어버린 사람들

*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 이들은 향품(시체에 발라서 시체의 부패를 지연시키는 물질)을 준비해서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왔다.
-> 즉, 이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러 온 것이 아니라 죽으신 예수님의 시체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 여인 셋이서 새벽에 로마 군병들이 지키는 무덤에 찾아온 것도 대단한 용기와 결심을 필요로 한 일이었을 것이다.
-> 그러나, 이들의 신앙에는 부활 소망이 결여되어 있었다.
=> 이들은 주 예수님이 생전 여러 번 예고하신 "죽은 뒤 사흘만의 부활"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 제자들
-> 이들 역시 예수님의 부활 예고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곧 부활하실 예수님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도 잡혀 죽임을 당할까봐 도망쳐서 숨어 있었다.
->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먼저 목격한 여인들의 흥분된 증언에도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 이유야 어찌되었건 간에 (민심 동요 방지 목적), 예수님의 부활 예고를 오히려 잊지 않고 예민하게 반응한 사람들은 바로 대제사장 무리들이었다.
=> 주님과 항상 가까이 있던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까맣게 잊고 있었고 주님을 대적하는 세력은 주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다!
=> 아이러니!
=> 그러나 이것이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아닌가?

* 오늘날의 기독교인들
-> 요한복음 13:34~35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 위의 성경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랑"은 기독교의 대명사이다.
-> 그러나... 사랑 실천에 있어서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헌신적으로 임하는가?
-> 한 아프리카 선교사님의 증언 : "아프리카에는 수많은 비기독교 휴머니스트들이 자신의 삶을 바쳐가며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들처럼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기독교인들의 수는 이들보다 훨씬 적습니다..."


2. 두려움이 변하여 큰 기쁨으로!

* 여인들의 심경
-> 두려움, 낙심, 절망 가운데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감 -> 큰 지진과 천사를 목격 -> 두려움이 점점 큰 기쁨으로 바뀜 (본문 8절)
-> 지진과 천사를 목격했을 당시에는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상태였다.
-> 이 때 그들의 신앙은 "죽음, 절망의 신앙"에서 "부활, 기쁨의 신앙" 으로 바뀐 것이다.
-> 누가복음 24:5~8
여인들은 너무 무서워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살아 계신 분을 왜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찾고 있느냐?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너희와 함께 계실 때 하신 말씀을 기억해 보라. '인자가 마땅히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3일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 고 하시지 않았느냐?" 여인들은 예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 이처럼 주님은 늘 자신이 당할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언급하실 때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실 것임을 말씀하셨다.
=> 고난과 부활은 동전의 양면!
-> 여인들이 주님이 늘 말씀하셨던 고난과 부활 예고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더라면, 주님이 십자가 고난을 보고 예언이 성취되고 있음을 깨닫고 부활을 기대하기 시작했어야 했다.
-> 그러나 그들은 이 예언을 완전히 까먹고 있었고, 부활의 날 천사가 주님의 부활 예언을 그들에게 상기시켜준 것이다.
-> 천사의 도움으로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예수님의 부활 예언을 다시 기억하게 되자 그들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기쁨으로 넘쳐나게 되었다.
=>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믿으면 우리에게는 기쁨이 회복된다! (얼굴이 펴지고 걸음걸이가 달라진다!)

* 현재 우리 교회 성도들의 모습
-> 많은 성도분들이 교회에 예배 드리러 오는 걸음걸이와 모습은... 거의 모든 분들이 현재 겪고 있는 삶의 어려움에 힘겨워 하고, 여러가지로 우울해 하고, 답답해 하는 표정과 태도였다.
-> 그러나 주님 말씀을 기억하고 믿으면 우리 삶의 고난과 근심 걱정을 소망으로 바꾸고 우리의 좌절을 새로운 삶의 용기로 바꿔 나갈 수 있다!

* 기쁨을 얻기 위해 기억해야 할 말씀들
-> 요한복음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
(우리 마음 속의 근심을 기쁨으로 바꿔보자.)
->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잘 묵상해서 상황 앞에서 무기력한 내 자신에 실망하다가도 새로운 용기를 얻어보자.)
-> 로마서 8:1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의 발목을 끈질기게 잡고 늘어지는 마음의 짐... 바로 "죄책감"! 이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해주는 말씀이다.)

* 우리의 신앙생활의 성패
-> 내 현재 상황 안에서 주님 말씀을 어떻게 붙들고 있느냐에 달렸다.
->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죽어서 시체가 썩고 있던 나사로도 벌떡 일어난다 (시체의 신앙이 산 자의 신앙으로)
=> 예수 그리스도 : 부활의 첫 열매
=> 우리도 예수님처럼 마지막 때에 부활할 것이다!

* 사울과 다윗의 차이점
-> 사울 : 그의 우환은 다윗이었다. (다윗을 질투.. 다윗 때문에 불안해 함) -> 늘 다윗을 생각함
-> 다윗 : 그의 우환은 사울이었다. (사울 왕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절체절명의 형편) -> 그 상황에서 그는 사울 대신 하나님을 생각함!
=> 끊임없이 다윗을 묵상한 사울 vs 끊임없이 하나님을 묵상한 다윗 !
=> 결국 다윗은 위기를 모두 벗어나고 승리자가 될 수 있었다.


3. 맺는 이야기

* 폐암으로 고생하다 소천하신 한 환우분 이야기
->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져서 나중에는 가족들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기 시작하심
-> 그 분이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쓰신 일기 중... "하나님, 다른 것은 다 잊어도 하나님만은 잊지 않게 해주세요..."
=> 여러분은 늘 하나님을 기억하고 사십니까?

* 크리스천 생활의 관건
=>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는가?
=> 살아가면어 어떠한 판단이나 결정을 내릴 때에도 주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고 그에 합당한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가?
=> 매일 살아가면서 주님 말씀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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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ovember 2009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설교 제목 : 무덤조차 두려워하는 사람들
설교 본문 : 마태복음 27:62 ~ 66


0. 여는 이야기

* 할로윈 (Halloween)
-> 공포 컨셉으로 가득한 미국의 대중 명절
->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묘지, 흉가 등의 기괴한 모습으로 꾸미고 영화관에서 공포영화를 본다

* 예수님을 고발하여 죽게 만든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두려워하였다.
-> 이들은 놀랍게도 본문(62~66절)에 나온 요청(예수님의 무덤을 돌로 단단히 봉하고 경비병을 세워서 잘 지키라고 빌라도에게 부탁)을 안식일에 하였다.
(안식일에는 어떤 종류의 노동도 해서는 안된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로마 총독을 공적인 업무로 찾아가 접견함)
-> 그들은 일명 종교적 형식주의자(안식일 규례를 생명처럼 지키는 자들)인데, 도대체 어떤 이유로 자신들이 생명처럼 집착하는 안식일 규례를 어기면서까지 예수님의 무덤을 막는데 혈안이 되었었나?
-> 그들이 주장한 이유 (표면적인 이유) : 민심의 요동을 막기 위해
-> 본문 63~64절 : "총독 각하, 저 거짓말쟁이가 살아 있을 때 '내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라고 말한 것이 기억납니다. 그러니 3일째 되는 날까지는 무덤을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훔쳐 놓고는 백성들에게 '그가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났다' 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번의 마지막 속임수는 처음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거짓 이유에 불과했다! (진짜 이유는 곧 소개될 것임..)


1.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한 주장들 / 이 주장들이 틀린 이유

* 예수님 부활 후 제사장들의 부활 은폐 시도 (마태복음 28:11~15)
그 여인들이 길을 가는 동안 몇몇 경비병들은 성안으로 들어가서 대제사장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모두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은 장로들과 만나 계략을 꾸미고는 군인들에게 많은 돈을 쥐어 주며 말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고 말하라." 만약 이 소문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잘 말해서 너희에게 문제가 없도록 해 주겠다." 그러자 군인들은 돈을 받고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된 것입니다.

* 이후 오늘날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한 주장들이 많이 있었다.

1) 기절설
-> A.D. 70년 경에 쓰여진 코란에서 주장됨
->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의식을 잃고 기절한 것이라고 주장
-> 1982년에 출간된 책 "Holy Blood, Holy Grail" 에서는 총독이었던 빌라도가 제자들의 뇌물을 받고 예수님이 죽기 전에 십자가에서 끌어내렸다고 주장함
-> 19세기 신학자 칼 벤투리니 역시 같은 주장을 함

* "기절설" 의 모순
=> 현실적인 조건으로는 불가능한 시나리오
예수님이 그 모든 고난(모진 채찍, 가시 면류관,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심)을 겪으시고 난 후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허리에 창을 찔리신 후 물과 피를 쏟으신 후 사형 집행인들로부터 사망 선고를 받으시고 수의에 온몸이 꽁꽁 싸매어지신 후에 장례용 향유에 온 몸이 흠뻑 적시워지신 후... 3일간 음식과 물을 못 드신 상태에서 1톤에 달하는 무덤을 봉했던 돌을 혼자 움직이시고 나와서 경비병들을 때려눕힌 후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다?....... 이는 억지 주장이다.
=> 의학적으로 판명된 예수님의 죽음
의학자 윌리엄 D 에드워드는 한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로마 군병이 예수님의 허리를 창으로 찔렀을 때 쏟아져 나온 물과 피는 응고된 피와 혈청이 분리되서 나온 것으로, 오직 죽은 사람한테서만 가능한 현상이다" 라고 말했다.
=> 대제사장들의 말에서 드러나는 증거
본문 63절에서 "저 거짓말쟁이가 살아 있을 때..." 라고 말한 부분 : 이 말은 예수님이 확실히 사망했음을 이들이 확인했음을 의미한다.
이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이라 확인을 철저히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2) 도적설
->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치고 나서는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는 주장

* 도적설의 모순
-> 만약 그들이 시체를 훔쳤다면, 그들 자신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텐데 과연 그들이 그런 주장을 했을까?
-> 물론 그럴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없던 일을 지어내기도 하기 때문)
=> 하지만, 이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숨 걸고 증거하다가 차례차례 순교했다.
-> 이들은 예수 부활을 부인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는 협박을 받았지만, 그들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부활을 증거했다.
=> 사람은 자신이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지만, 거짓임을 뻔히 알고 있는 일에 대해서 목숨을 바치는 경우는 없다.
=> 예수님이 체포되실 당시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쳤던 제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순교자로 바뀔 수 있었던 원동력은?


2.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두려워한 진짜 이유

*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막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 했었다.
-> 그러나 오히려 예수님 부활의 확실한 증거를 만들어 준 꼴이 되었다.

* 그들은 왜 그토록 예수님의 부활을 막고자 했는가?
=> 예수님의 부활로 자신들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
=> 그동안 예수님이 옳았었고 자신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이 잘못된 일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되기 때문에

* 한 개의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서는 일곱 개의 더 큰 거짓말이 필요하다.
-> 만약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바로 인정했더라면 더 큰 거짓말을 안해도 되었을 것이다.


3.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이유

*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면 자신의 이성적, 합리적 사고가 무장해제 된다고 생각해서 자신 나름대로 예수님의 부활을 다양하게 부인한다.
-> 그리고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 사람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시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 예수님이 날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내 죄를 대속하셔서 나를 천국 갈 수 있게 해주신 것이니 이에 대해 사람들은 참 감사해한다.
=> 하지만 예수님이 그냥 자신의 죄를 짊어지고 무덤 속에 계속 죽은 채로 계셨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 예수님이 살아서 나오시는 순간, 그것은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내 자신의 인생의 주도권을 놓고 싶지 않고자 하는 자아의 몸부림인 것이다.

*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에 한 발만 담그고 있다.
=> 두 발을 다 담그면 지금까지 누리는 행복과 쾌락을 다 내려 놓아야 한다는 두려움에 두 발 담그기를 주저한다!


4. 맺는 이야기

* 밤길을 가다가 절벽에 떨어진 사람 이야기
-> 밤길을 가다가 발을 헛디뎌서 절벽에 굴러 떨어지다가 나뭇가지를 겨우 잡아서 매달리게 됨.
-> 그 때 주님이 그 사람 마음 속에 말씀하시기를 "나뭇가지를 잡고 있는 두 손을 지금 모두 놓아라."
-> 그 사람은 두 손을 다 놓으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을 무서워하여 절대 손을 놓지 못하고 밤을 지샘
-> 나중에 동이 트고 보니 그 사람은 이미 지면에 굉장히 가까운 위치에 있어서 그냥 손을 놓았으면 땅에 사뿐히 내려와서 갈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이었음

* 혹시 나는 무덤을 열고 나와 부활하신 주님과 맞닥뜨리기를 두려워하고 있나?
=> 주님 말씀을 온전히 따르기 위해 지금 내가 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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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October 2009

"내려놓음"의 저자 이용규 선교사님의 피츠버그 한인중앙교회 부흥회 중 주일 설교내용 요약

설교 제목 :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0. 여는 이야기

* 시편 37:5
당신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십시오. 또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 처음에 몽골에서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셨을 때... 그 당시에는 나중에 각국을 돌며 말씀을 전하고 책도 내게 되실 줄은 당연히 전혀 꿈도 못 꾸고 있었다.
->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 있었다.


1. 처음으로 중국 KOSTA (해외 유학생 기독교 집회)에서 설교하시게 된 경위

* 몽골에서 중국으로
-> 원래 선교사님은 몽골 국제대학교에서 몽골과 그 주변의 소수 민족 학생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고 계셨다.
-> 그러던 어느날, 선교사님이 몇 주동안 중국으로 파견되게 되셨다.
-> 그 무렵 중국은 노동절 휴일 기간(우리나라의 추석, 미국의 추수감사절에 비교되는 가장 큰 명절)이었다.

* 선교사님과 하나님의 (기도를 통한) 대화
-> 그러던 어느날 새벽, 선교사님은 주님이 부르시는 듯한 느낌을 받고 새벽에 잠에서 깨셨다.
-> 선교사님은 그 주에 북경에서 열리는 KOSTA 를 위한 중보기도를 하라는 음성을 마음 속에서 들으셨고, 또한 심지어는 선교사님더러 KOSTA 에 직접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음성까지 들으셨다.
-> KOSTA 의 규모와 위상 등을 생각하시고 압도되신 선교사님은 주님께 기도로 자신이 왜 그곳에 가기 꺼려지는 지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으시며 주님과의 대화를 시작하셨다.
-> 1) 저는 몽골 선교사이지 중국 선교사가 아닙니다.
-> 2) 노동절 휴일 기간에는 기차표를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 3) 저는 파송된 지 7개월 밖에 안된 무명의 선교사입니다. (KOSTA 설교자 섭외는 늦어도 3개월 전에는 다 끝나고 설교자분들은 대부분 굉장히 유명한 목사님이나 선교사님들이시다)
=> 한 마디로 요약 : "하나님! 저 바보되고 싶지 않습니다! 안됩니다!"
=> 그 때 선교사님의 기분 : 모세가 바로한테 주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명을 받았을 때 핑계와 변명을 늘어놓았던 것과 같은 느낌
=> 그런 직후 선교사님은 주님께 이렇게 다시 기도하셨다 : 그 곳에 가는 것까지는 제가 자발적으로 하겠지만, 가서 말씀 전하는 것은 제가 직접 나서서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

* 하나님의 역사하심
-> 기차표를 구하러 갔는데 정말 우연치고는 너무도 황당하게 표가 남아있어서 북경까지 가게 됨
-> 그리고 또 한 번의 우연으로 예전에 알고 지내던 선교사님을 북경에서 만나시게 됨
-> KOSTA 관계자였던 이 분은 선교사님에게 북경에 온 이유를 물으셨고, 선교사님은 잠시 주저하다가 기도 내용을 알려드림
-> 그래서 이 분의 소개로 KOSTA 의 여러 관계자들을 만나게 됨 ("팔복" 을 만든 김우영 감독 등등)
->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KOSTA 설교자들 중 한 분이 자신에게 할당된 1시간 중 30분을 선교사님에게 떼어주심
-> 그래서 1500 여명의 유학생 앞에서 설교를 하시게 됨
-> 설교 시작 말씀 : "내몽골에서 북경까지 오게 된 것은 여기 모이신 분들 중 누군가는 제 설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설교 끝나고 많은 학생들이 선교사님께 와서 "저 때문에 오신 것임을 확신합니다!" 라고 은혜 받았음을 고백
-> KOSTA 집회때 만나게 된 관계자분들의 권유로 책을 쓸 것을 생각하게 됨

* 중국 KOSTA 설교 후 많은 사람들이 했던 질문 : "선교사님은 어떻게 내 마음의 소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소리인지 사탄이 주는 소리인지 알 수 있으십니까?"


2.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 라디오 전파 :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늘 공중에 떠다닌다
-> 라디오를 구해서 주파수를 제대로 맞추면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

*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무서워한 나머지 주님과의 직접 소통을 거부했다.
-> 그래서 여호와->모세->아론->백성들 과 같은 식으로 주님의 말씀이 전달되었다.

*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의 핵심은 "교제" 이다!
-> "교제"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다.

* 하나님과 소통이 잘 안 될 때의 문제점
-> 기도를 오래 할 수 없다 (마치 벽 보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 이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 형성이 제대로 안 되어 있어서 생기는 것이다.
-> 한 자매의 예 : 부흥회 후 은사를 받아서 주님의 음성을 마음속에서 계속 들을 수 있게 됨. 주님은 그 자매의 생활을 상세한 부분까지 자상한 아빠처럼 말씀을 하심. 그 자매의 반응.. "하나님, 그동안 저한테 말씀 못해서 답답해서 어떡하셨어요?"

* 하나님과의 소통이 잘 안 되는 이유
-> 하나님을 우리 자신의 틀 안에 가둬놓으려 하기 때문
=>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 말씀하시고 이 말씀들은 성경을 통해 confirm 된다.


3. 하나님의 음성

* 위조 지폐의 예
-> 100$ 위조 지폐는 많다.
-> 1$ 위조 지폐는 없다.
-> 3$ 위조 지폐는 없다.
=> 진짜가 있어야 가짜가 있고, 중요한 것일수록 가짜가 많다.
=> 하나님의 음성과 혼동될 수 있는 사탄의 음성들이 들릴 수 있다.

* 주님의 종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의 주의 사항들
-> 1) 우리 안의 정결함과 순종하는 마음이 필요
-> 중요한 것은 "관계" 이다.
-> 우리가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만 제대로 있으면 시행착오 끝에 결국에는 올바른 길로 인도된다.
-> 2)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식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 예전 조선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한시(4언절구 등)의 형식으로 들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 듣는 사람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말씀이 들린다.
-> 3) 사탄이 주는 소리는 급하고 찌르는 형식과 내용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소리는 섬세하고 부드럽다 (평안한 가운데 조용한 확신)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평화가 밀려온다.
-> 그러나 하나님과의 교제가 부담스러워서 그 말씀에 귀를 닫으면 관계가 성장하지 않는다.
-> 4) 하나님 말씀을 듣고 싶은 마음이 단순한 호기심에서라면 들리지 않을 것이다.
-> ex. "일단 한 번 말씀해 보세요. 그 말씀이 내 뜻과 맞으면 거기에 따를게요." -> 이러면 절대 안들린다.
-> 우리는 자꾸 자신의 뜻만 앞세우기 마련이다...
-> 5) 내 안에 내 자신의 소리가 너무 크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 것이다.
-> 6)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싶으면 우선 주님께 고백해야 한다. "주님, 말씀해주세요. 100%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 사탄의 유혹 "미쳤어?" "네가 실력이 있냐, 능력이 있냐?" "사람들한테 광신도 취급 받으면 어떡할래?" 등등..
=> 이런 유혹에 넘어가 마음의 문을 닫으면 하나님 말씀이 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4. 응답되지 않는 기도에 대한 고민

*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해주시지 않음에 불만을 가지고 좌절한다.
-> 그러나 응답되지 않은 기도에도 그 의미가 있고 기도 응답이 늘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만은 아니다.

* 모세의 기도
-> 모세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대개 기도에 응답해주셨다.
-> 그러나 모세의 평생 소원인 "가나안 땅 입성" 에 대한 기도는 들어주지 않으셨다.
-> 배경 원인 : 민수기 20:1~13
->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자 모세와 아론에게 대들었을 때, 모세는 여호와의 명을 받고 바위를 두 번 쳐서 백성들과 가축을 위한 물을 내어줬으나, 여호와의 명령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바위에서 물이 나오는 기적에 대한 영광을 여호와께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이에 분노하셔서 모세와 아론이 가나안 땅에 입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그 후 모세가 가나안 입성을 열망하며 여호와께 기도를 드렸을 때 여호와의 대답 : 신명기 3:26 ("그것으로 충분하니 이 문제에 대해 내게 더는 말하지 마라." 즉, "모세야, 너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다.")
->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에 입성함.
=> 모세는 예비하는 자, 여호수아는 천국(약속의 땅)의 완성자로서의 사명을 각각 가진 것임
=> 이는 세례 요한(예비하는 자), 예수님(천국의 완성자)의 사명과도 같다.
=> 모세와 세례 요한은 멈출 줄 알았고, 그들이 가졌던 질문에 대한 해답은 예수님을 통해 제시되었다.
=> 응답되지 않은 기도들 안에는 주님이 당신에게 주신 사명이 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들어주시지 않는 것이고, 당신의 사명에 대한 기도는 들어주실 것이다)

* 히스기야 왕의 기도
->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듣고 죽도록 기도했는데 여호와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생명이 연장됨
-> 생명을 연장해서 얻게 된 아기 : 므낫세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독한 왕)
=> 기도 응답이 늘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만은 아니다!


5. 맺는 이야기

* 샘물교회 사건
-> 이 사건에 대해 선교사님이 들으신 주님의 음성, "죽음의 문제는 극복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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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앙돌이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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