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January 2010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설교 제목 : 회복과 부흥의 은혜
설교 본문 : 요한복음 21:15~23

그들이 아침 식사를 끝마치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예, 주여,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 양떼를 먹여라."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수께 대답했습니다. "예 주여,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 떼를 쳐라."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째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근심하며 말했습니다. "주여, 주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 떼를 먹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내게 말한다. 네가 젊어스는 스스로 옷 입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리고 너를 묶어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인지를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라!"
베드로가 돌아와서 보니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이 제자는 만찬에서 예수께 기대어 "주여, 주를 배반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제자를 보며 예수께 물었습니다.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원한다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이 말씀 때문에 이 제자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형제들 사이에 퍼졌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원한다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말씀하신 것뿐이었습니다.


<< 설교 요약>>

최근 전세계적으로 계속되고 있는 폭설 등의 기상 이변은 온난화라는 병을 앓고 있는 지구의 자가 치료 노력이라는 견해가 있다.
무생물인 자연 조차 자연 정화를 위해 움직이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된 우리 인간은 영적 건강의 이상을 자각하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는가?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은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의 30주년 표어는 "회복과 부흥" 이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점과 영적으로 병든 모습을 자각해야 한다.


오 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똑같은 질문을 세 번 반복하신다.

* 왜 예수님은 같은 질문을 세 번 반복하셨을까?
=> 베드로의 회복과 온전한 부흥을 위해!!

*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아직 주님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죄책감과 패배의식에서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 특히 베드로... 자신이 세 번이나 주님을 배반했었으니 예수님이 자신의 당신에 대한 사랑을 의심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3 : "배반의 숫자"에서 "사랑 고백의 숫자"로
-> 새벽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3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3이라는 숫자는 "배반의 숫자"로 각인되게 되었다.
->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자신을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을 똑같이 3번 하심으로써 3이라는 숫자에 얽힌 베드로의 트라우마를 해제시켜 주신 것이다.
-> 이제 3은 베드로에게 "사랑 고백의 숫자"로 대체되었다.

* 숯불 앞 : "배반의 장소"에서 "사랑 고백의 장소"로
->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곳이었던 숯불 앞은 이제 베드로가 주님에게 사랑을 고백한 장소가 되었다.

* 자녀들의 실수를 대할 때 예수님을 떠올리자
-> 자녀들이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그들은 이미 자기들이 잘못한 걸 알고 있다.
-> 그래서 위축되어 있고 구석에 움츠러들어있다.
-> 여기다 대고 "넌 그렇게 밖에 못하니?" 하는 식으로 질책하면, 아이의 반응은 "그래요 나 바보 멍청이에요, 됐어요?" 하는 식으로 대답하고 비뚤어질 가능성이 높다.
-> 그러니 따뜻한 말과 태도로 자녀를 회복시켜 줄 수 있도록 노력하자.

* 우리가 실패했을 때,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자.
->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야기 하셨듯이 우리에게도 "괜찮아, 나는 널 영원히 사랑해. 너도 날 사랑하니?" 라고 물어보실 것이다.
-> 실패의 기억에 괴로워하고 몸부림칠 때,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듣고.. 용기를 내어 고백하자.
-> 그러면 주님이 그 고백을 받으시고, 우리를 일으키시고, 새 힘을 주실 것이다!

*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에 사용된 동사의 차이점
-> 예수님의 첫 두 질문 : 아가파오? (아가페적 사랑 - 즉, 헌신적/희생적 사랑 - 의 의미)
-> 베드로의 첫 두 대답 : 필레오. (친구간의 깊은 우정 의미)
-> 예수님의 세 번째 질문 : 필레오? (예수님이 질문의 동사를 바꾸심)
-> 베드로의 세 번째 대답 : 필레오.
-> 이에 대한 성경 학자들의 해석이 분분하다.
-> 만약 베드로가 예전에 주님을 위해서라면 감옥이든 죽음이든 함께할 각오가 있었을 당시에(누가복음 22:33) 이 질문을 들었다면, 그는 당연히 "아가파오." 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 그러나 이제 베드로는 자신이 없어졌다...
-> 예수님은 왜 세 번째 질문에서 동사를 바꾸셨나? : 베드로의 현재 모습을 인정하심.. "거기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 베드로 역시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이 질문에 대해서 '필레오.'로 답함.

*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가? 그렇다. 하지만 사랑의 크기는 각각 다를 것이다.
-> 주님은 어떠한 크기의 사랑이라도 우리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실 것이다.
-> 주님은 "네가 지금 나에 대한 사랑이 얼마만큼이든 괜찮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라고 말씀해주실 것이다.
=> 다만, 베드로처럼 솔직히 자신의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 주님! 저는 주님을 사랑하지만 아직까지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며 따라갈 정도는 못됩니다. 하지만 제 마음 속에는 주님에 대한 사랑이 작게나마 있습니다!
=> 내 자신의 깨어짐과 실패를 인정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자!


<<내 삶에 적용>>

성경 속의 인물들 중 가장 애착과 동질감을 느끼는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베드로를 꼽는다.
베드로의 엉뚱함과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열정, 그리고 예수님이 끌려가실 때 예수님이 걱정되서 멀치감치 따라가지만 자신은 붙잡히기 싫어서 뜰에서 불을 쬐며 서성이다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나서 자신의 연약함에 통곡하는 모습... 내 모습과 너무 닮았다.

혼자 길을 가거나 운전하거나 앉아 있을 때... 내가 과거에 저지른 멍청하고 어이없는 실수가 자꾸 생각나서 너무 괴로울 때가 많다. 난 그 때 왜 그런 어이없는 말을 했을까?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왜 갑자기 당황하고 얼굴이 빨개지고 그랬을까? 등등 여러가지 생각이 튀어나오면서 공부하는 데 바빠야 할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는다. 그러면 반사적으로 내 입에서는 내 자신에 대한 욕이 튀어나온다. 그나마 최근들어 예수님 믿고 나서부터는 "주님, 살려주세요!" 하고 외치는 경우가 많아졌긴 하다. 하여튼 나는 과거의 실패에 발목 잡혀서 괴로워하고 있는 일이 그동안 많았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실패의 기억을 치료해주시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오늘 본문 말씀을 보고, 실패의 기억에 괴로울 때마다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설교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나를 지금 내 모습 그대로 인정해주시고 사랑해주신다는 걸 배웠다. 그런데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해주신다고 해서 그대로 남아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가 발전하는 걸 보고 싶어하신다는 걸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무튼 실패의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맴돌 때, 내 자신을 욕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이 모든 것은 사탄의 작업임을 인지하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아침을 차려주시고 사랑 고백을 이끌어 내시면서 회복을 시켜주셨던 사건을 떠올리면서 극복해야 겠다.

세상 기준은 단지 넘어지느냐 마느냐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 설교를 정리하는 현재 (2010년 6월 29일), 한국은 이미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16강까지는 올랐지만 16강전에서 탈락을 했고, 일본 역시 오늘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탈락을 했다. 사람들은 우리 한국팀에서 여러번 찬스를 놓치거나 수비 실수를 한 염기훈, 오범석, 이동국 선수 등을 요즘 말로 "가루가 되도록 까기" 바쁘다. 대표팀에서 그 선수들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나 역시도 우리 대표팀 선수들이 아까운 찬스를 놓칠 때 본능적으로 막 욕하게 되던데, 날마다 예수님의 성품을 점점 닮아가서 앞으로는 이렇게 결과만 보고 욕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세상의 호의는 16강, 8강, 4강을 진출해야만 얻을 수 있지만, 예수님의 호의는 비록 예선 탈락을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뛰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을 기쁘게 하는게 중요한가, 아니면 예수님을 기쁘게 하는게 중요한가?

명심하자. 모든 사람들이 주님께 받은 달란트가 다르듯이, 모든 사람들이 주님에 대해 가진 사랑의 크기는 다르다. 비록 출발선이 다르더라도 주님은 결과만 보고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과정과 우리의 마음, 열심히 노력한 걸 보시는 분이시다. 큰 실패를 한 다음에 예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섰다가도 나중에 또 큰 실패를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랑으로 다시 회복하고 일어나면 된다! 실패했다고 해서 내가 작게나마 가지고 있는 주님에 대한 사랑까지 송두리째 내던져 버리면 안되는 것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보시고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시고 받아주시는 주님, 저도 제 지금 현재의 모습을 직시하고 제가 어떻게 하면 발전할 수 있을지를 늘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살께요. 제게 은혜를 주셔서 더욱 부지런하게 살게 해주세요. 주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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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December 2009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설교 제목 : 아직 끝은 아닙니다!
설교 본문 : 룻기 1:1~6

사사들이 다스리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들어 유다 베들레헴의 어떤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잠시 모압 땅으로 가서 살았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다 베들레헴 출신의 에브랏 사람들인데 모압 땅에 가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거기에서 죽었고 나오미는 그 두 아들과 함께 남겨졌습니다. 나오미의 두 아들은 모압 여자와 결혼했는데 한 사람은 이름이 오르바, 또 한 사람은 룻이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에서 10년 정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말론도 기룐도 다 죽었고 나오미만 두 아들과 남편을 다 잃은 채 혼자 남게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압에 있던 나오미가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오셔서 양식을 공급해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두 며느리들과 함께 거기에서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습니다.


0. 여는 이야기

* O. Henry 의 마지막 잎새
-> 살다 보면 우리를 낙심케 하는 많은 일들을 만난다.
-> 그러다보면 우리는 좌절, 절망을 하게 되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삶을 포기하기까지 한다
-> 2009년의 마지막 주... 새해에 대한 기대보다는 불안감이 더 큰 경우도 많다 (마지막 잎새 처럼)

* 본문 중... 룻 가족의 비극적 상황
-> 얼핏 보면 모든 일이 우연히 벌어진 듯하지만, 사실은 이 모든 일이 잘못된 결정의 연속으로 인한 결과였다


1. 잘못된 결정 1 :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떠남

*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하나님이 주신 말씀
-> 당시는 사사시대 (여호수아 시대 바로 다음 시대)
-> 민수기 36:6~7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여호와께서 하신 명령은 이것이다. 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시집을 가기는 하되 자기들의 아버지의 가문 내에서만 시집을 가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의 유산은 한 지파에서 다른 지파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자손은 각자 자기 조상의 지파의 유산을 지켜야 한다.
-> 이 말씀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무슨일이 있어도 정착하고 지켜라" 라는 말씀이었다.
-> 땅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주님과의 약속을 무시하는 행위였다

* 하나님이 주신 땅을 버리고 떠난 엘리멜렉
-> 엘리멜렉은 여호와께 받은 땅에 흉년이 들자 그 땅을 버리고 모압으로 떠났다.
-> 엘리멜렉 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My God is the king" 인데 그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행동을 했다.
-> 몇 년 간의 흉년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모압 역시 이스라엘처럼 흉년이 들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모압은 100 k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 그래도 인간 심리라는 것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는 현 상황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 우리들 가운데도 고난이 닥칠 때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데 (직장 그만두거나 이사 가는 등등... 그리고 한 마디.. "예수 믿으면 다 잘될 줄 알았는데.. 에이씨..."), 엘리멜렉의 비극은 그가 있어야 할 이스라엘 땅을 버리고 모압으로 이주한 것에서 시작되었음을 기억하자!


2. 잘못된 결정 2 : 두 아들을 이방 여인들과 결혼시킴

* 나오미의 고난
->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이방 땅에서 키우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 나오미의 실수
-> 하지만 나오미는 여기서 또 실수를 했다...
-> 두 아들을 모압 여인들과 결혼시킨 것이다.
-> 두 며느리의 이름이 가진 뜻
오르바 : 암사슴
룻 : 붉은 장미
-> 이 이름들로 추측컨대 아마 이 두 여인은 무척 아름다운 여인들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예쁜 이름을 붙일만한 외모의 소유자였을 것임)
=> 그러나, 나오미는 이 며느리들이 신앙을 가지지 않은 이방 여인들이었음을 간과했다.

* 이름과 어울리는 삶?
-> 두 아들과 남편을 먼저 보내고 홀로 남은 나오미는 얼마나 큰 슬픔 속에서 가슴이 찢어졌을까?
->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 : 즐거움
-> 엘리멜렉(My God is the King) 이나 나오미(즐거움)나 이름의 뜻은 좋았는데 그들의 삶은 이름에 걸맞지 않았다...
-> 목사님 이름은 은혜 은, 빼어날 수 자를 쓰는데, 원래 수 자는 목숨 수 자였지만 중학교 때 지금의 한자로 바꾸셨다고 한다 (거의 돌아가실 뻔 하다가 살아난 뒤로...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살라는 의미로 이름을 바꾸셨다고 함)
-> 교회 이름들 중 "화평 교회" 라는 이름이 많은데, 이 교회들 중에서 그 이름과는 달리 서로 싸우고 다툼하는 교회도 상당히 있다...

* 우리의 또다른 이름 : 크리스천
-> 우리들은 각자 좋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더 중요한 이름이 있다.
-> 그 이름은 바로 "크리스천" :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 예수님이 생명의 값을 치르고 주신 이름
-> 이 이름의 의미를 지키며 살려면, 매 순간 올바른 결정을 하며 살아야 한다.

* 미국 22대 대통령 Stephen Cleveland 이야기
-> 어렸을 때부터 정직하기로 소문남 (옆집 닭이 자기네 집 마당에서 알을 낳자 그 알을 옆집에 돌려줌)
-> 그러나 청년 시절 나쁜 길로도 빠짐 (도박장 출입)
-> 어느 날, 도박장을 가면서 도박장 옆 교회 앞을 지나가다가 설교 제목을 우연히 봄
-> 설교 제목 : 죄의 삯은 사망
-> 이를 본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그 교회에 갔고, 그날 그는 거듭났다.
-> 그 때 같이 도박장에 가던 친구에게 교회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지만, 그 친구는 그의 권유를 거부하고 계속 도박장에 출입...
-> 수 십년 후... Cleveland 대통령이 취임하던 날, 그 친구는 감옥에서 신문으로 친구의 대통령 취임 소식을 접함.

*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 올바른 결정이 인생을 좌우한다!


3.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닙니다!

* 자식 잃는 부모의 심정
->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라고 한다...
-> 목사님의 부모님도 자식을 두 분이나(목사님 밑의 동생들) 잃으셨음...
-> 그 아픔을 신앙으로 겨우 극복하셨다고 한다...

* 슬픈 일의 연속으로 가슴이 찢어질대로 찢어진 나오미...
=>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닙니다!
-> 본문 6절 :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절망에 널브러져 있던 나오미에게 고향땅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옴
=> 룻기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됨!

* 포기하지 맙시다
-> 올 한해는 세계적 경제 불황으로 이민자나 유학생이나 모두 힘든 한 해를 보냈다
-> 좌절, 절망, 낙심... 그러나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니 포기하지 말자!
-> KFC 창립자 Colonel Sanders : 사업 실패 등 많은 고난을 겪다가 65세에 KFC 창립 후 크게 성공
=> 하나님께는, 내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나, 무엇을 갖고 있나가 중요하지 않다. 그냥 열심히 하면 되는 거다.


4. 맺는 이야기

* 다시 O. Henry 의 마지막 잎새
-> 나무에 끝까지 남아 있던 잎새는 사실 아랫 층에 살던 노인 화가가 그린 것이었다.
-> 그런데 이 노인 화가는 비바람 속에서 벽에 그림을 그리느라 폐렴을 얻어서 죽음..
=>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마지막 잎새를 쥐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데 우리가 왜 포기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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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December 2009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설교 제목 : 하나님의 열심
설교 본문 : 이사야 9:6~7

한 아이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얻었다. 그의 어깨에는 주권이 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불릴 것이다. 그분의 넘치는 주권과 평화는 다윗의 보좌와 그의 왕국 위에 끝없이 펼쳐질 것이다. 지금부터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견고히 세우실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정이 이것을 이루실 것이다.


0. 여는 이야기

* 목사님 댁이 있는 마을의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
-> 목사님 댁 부근에는 길을 사이에 두고 길 위로 4집, 길 아래로 4집이 있다 (목사님 댁은 길 아래에 위치)
-> 길 위로 있는 집 4집은 모두 크리스마스를 맞아 화려하게 장식을 했지만, 길 아래쪽의 4집은 모두 크리스마스 장식을 안했다.
-> 길 위의 집들 중 특히 목사님 댁 바로 맞은 편의 집은 가장 화려하게 장식을 했다 (루돌프 사슴, 천사들 등등)
-> 그러자 그 옆집도 질세라 큰 전나무를 사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다.
-> 그런데 이 두 집들은 예수님을 안믿는 집들이라고 한다 (주일날 교회 안 가고 놀러다님)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매년 크리스마스 장식을 열심히 한다고 함
=> 그들은 도대체 무엇때문에 크리스마스 장식에 저리도 열심인가? 저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어떤 의미일까?

* 오늘날 이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열심을 낸다
-> 사업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즈니스 대목, 청춘 남녀들에게는 사랑의 추억을 만드는 날, 자식을 타지에 보낸 부모들은 이 연휴를 이용해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
-> 오늘날 크리스마스는 사람들이 열심을 내는 날이 되었다.
=> 그러나, 원래 크리스마스는 "하나님이 열심을 내는 날(The day of the zeal of the lord)"이다!
=> 오늘날 성탄절에 보이는 사람들의 세속적 행태는 성탄절이 하나님의 열심의 날임을 잊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성탄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열심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나?


1. 하나님의 열심 : 복음을 위한 열심

* 오프라 윈프리쇼에 출연했던 시각 장애인 사업가 톰 설리번
-> 그는 어린 나이에 사고로 실명하고 크게 낙심해서 절망의 나날을 보냈다.
-> 주변 친구들이 아무도 놀아주지 않아서 더욱 참담한 나날을 겪었다.
-> 그러던 어느날... 옆집 아이가 그에게 다가와서 "want to play?" 라며 그에게 같이 놀자고 말을 건넸다고 한다.
=& gt; 이 세 마디의 말(want to play?) 이 그의 삶을 바꿨다 : 이 말이야 말로 앞을 못보는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가치를 지닌 인간임을 인정해주는 말이었던 것이다.
=> 그는 이 말에서 크나큰 힘을 얻고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영혼의 눈을 떴다고 한다.
=> 이 말이야 말로 복음의 핵심을 명료하게 드러낸 것이 아닌가?

* 복음의 핵심을 간단명료하게 드러낸 말 : "Want to play?"
=> 복음은, 흑암속에서 방황하고 절망 속에서 널부러진 우리 인간을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나와 같이 놀래?", "천국에서 같이 살래?" 라고 말씀하시며 손을 내밀어주신 사건이다.
->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 요한1서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자기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생명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습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위해 그분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 복음의 핵심 :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그 독생자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독생자를 희생시키신 이유
->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게 있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땅에 당신의 독생자를 보내시는 번거로움과 부끄러움을 감수하셨다.
->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대충대충, 불완전하게 하신 게 아니라 완전하게 하시고 싶으셨기 때문이다.
=> 만약 우리의 죄값에 대한 책임을 덮어두고 우리를 구원하셨다면, 이는 두고두고 사탄이 우리를 트집잡을 빌미를 제공했을 것이다.
(ex. 사탄이 우리에게 계속해서 이렇게 속삭였을 수도 있다. "너는 아직 네 죄값도 치루지 않았는데 구원 받았다는 게 말이나 되냐?")

*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시기심
-> 이사야의 표현
->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사탄의 세력이나 우상에게 뺏기고 싶어하지 않으신다.


2. 하나님의 열심 :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친히 오신 열심

* 포인세티아 :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꽃
-> 지금 강단을 장식하고 있는 꽃들
-> 빨간 잎(포엽)들은 사실 꽃이 아니고 그 빨간 잎들 사이에 작은 꽃이 있다.

* 왜 포인세티아가 크리스마스의 대표적인 꽃이 되었나?
-> 두 가지 설이 있다.
-> 1) 멕시코 소녀 루시다 이야기
(성탄절에 온 마을 사람들이 주님께 선물을 바치는데 루시다는 바칠 게 없어서 슬피 울었는데 그 눈물이 떨어진 땅에 빨간 꽃들이 피어나서 나중에 이 꽃들을 바쳤다는 이야기)
-> 2) 빨간 포엽은 주님의 피(희생)를 상징하기 때문
-> 포인세티아의 원산지는 멕시코이다
-> 1830년 멕시코로 간 미국 외교관 조엘 로버츠 포인세트 박사가 이 꽃을 발견하고 미국으로 도입했다
-> 이 포인세트 박사의 이름을 따서 이 꽃의 영어 이름이 포인세티아가 된 것이다.

* 목사님이 생각하는 포인세티아가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꽃인 이유
-> 포인세티아의 원산지인 멕시코는 더운 나라다.
-> 이렇게 더운 환경에서 잘 자라는 포인세티아가 미국의 추운 겨울 날씨에서 꽃을 피우려면 온실 속에서 수십일간 빛을 차단한 채 온갖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지 된다고 한다.
-> 원산지인 멕시코에서 자랐으면 별 어려움 없이 꽃을 잘 피울 수 있었을텐데, 전혀 다른, 힘든 환경 속에서 꽃을 피우기 위해 밀폐된 어둠 속에서 모진 인내 끝에 아름다운 꽃을 피워서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다.
=> 우리 주님께서는 하늘의 영광스런 보좌를 버리시고, 죄악으로 숨막히는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고 우리를 자신의 백성 삼으신 것 : 바로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본질이다.
-> 포인세티아의 개화 과정과 예수님의 고난 후 영광을 얻으시는 과정은 이렇게 비슷하다.


3. 하나님의 열심 : 임마누엘의 열심

* 우리의 평생동안 겪게 되는 고난
->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당장 모든 고생이 끝나고 행복만이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끝없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 그러나, 그 어떤 아픔과 고난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지는 못한다!
=> 우리는 삶의 모든 고난을,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게 될 것이다!
=> 하나님의 열심은 임마누엘("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의 열심이기 때문!

* 임마누엘의 하나님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의 폭풍우 속에서 절망하고 있더라도 우리를 고난에서 건져내지 않으시고 그냥 두실 수도 있다.
->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고난 가운데 우리와 임마누엘로 함께 하실 것이다
-> 그래서 그 고난에 매몰되지 않도록 우리를 지키실 것이다!
=> 우리는 약하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계신 강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실 것이다!

*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 자기 백성들을 위해 잠시도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있기 때문
-> 이 성탄의 계절, 다른 모든 사람들은 기뻐하고 행복하게 지내지만 남들처럼 기뻐할 수 없는 아픔이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은 하나님의 열심이 그 눈물을 닦아줄 것입니다.

* 절망을 소망으로 바꾼 크리스마스!
-> 깊은 절망에 빠져있습니까? 절망은 크리스마스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깊은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신 하나님의 열심이 빛나는 날이기 때문!
=> 우리를 위해 지금도 열심을 내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다시금 소망을 가지고 일어나자!


4. 맺는 이야기

*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 카드 이야기
-> 올해도 많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 받았지만, 그 중 특별한 크리스마스 카드가 배달되었다
-> 감옥에 있는 두 중국 분들이 직접 만든 카드...
-> 우연히 다른 분의 소개로 알게된 분들인데, 두 분들 중 나이 많은 분은 독실한 불교신자로, 14년간 감옥에 있으면서 면회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고 한다.
-> 그러던 중 나이 어린 다른 분이 그 분을 사랑으로 대하며 전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두 분은 직접 카드에 그림을 그려서 목사님께 보내셨는데, 교회를 수채화로 그리셨다고 한다.
-> 목사님은 이 분들을 보며 하나님의 열심을 느끼셨다
-> 14년간 절망 속에 헤매던 길 잃은 양을 크리스천을 만나게 해서 목사님과 교회 공동체와 교류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열심!
=> 다시 한 번, 우리는 성탄절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하나님이 열심을 내신 날임을 기억해야 한다!

* 하나님의 열심을 본받은 우리의 열심
-> 아무쪼록 성탄절에 세상 분위기에 휩쓸려서 파티하고 웃고 떠들고 놀다가 나중에 이 모든게 지나가면 마음속에 허무함이 엄습하는 걸 겪지 말자
=> 그 대신, 우리를 향한 임마누엘의 열심을 내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날로 성탄절을 보내고, 하나님의 열심을 본받아 아직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 우리도 열심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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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December 2009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설교 제목 : 평강의 왕, 예수!
설교 본문 : 이사야 9:6

한 아이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얻었다. 그의 어깨에는 주권이 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불릴 것이다.


0. 여는 이야기

* 이 세상 모든 돈 vs 아빠
->목사님이 어느날 집에서 가족과 함께 식사 하시면서 아들과 나눴던 대화
- 목사님 : 너는 이 세상 모든 돈과 아빠 중에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고를테냐?
- 아들 : 아빠요
- 목사님 : 오 역시 내 아들~
- 아들 : 이 세상에서 아빠를 괴롭히는 것 만큼 재미있는 건 없어요
- 목사님 : .....

* 두 장의 사진 감상
-> 두 장 모두 퓰리처상 수상작
-> 두 장 모두 슬프고 안타깝고 비극적인 사진들이었다..
-> 전쟁, 재난 등으로 슬픔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사진..

* 새천년을 맞은 사람들이 가장 바랬던 것 : 평화
-> 9년 전인 2000년을 맞아 새천년을 맞이하여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설문 조사를 했다고 한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화" 를 원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 그러나... 2001년의 9/11 테러 이후 아프간, 이라크 전쟁 등이 이어졌고, 이 세상에는 평화가 깃들 여유가 점점 없어졌다.
->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평화는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1. 완전한 평강의 소유자 예수!
(Jesus is the Man of Peace)

* 어떤 상황에서도 놀라시거나 두려워하시지 않으셨던 예수님
->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거친 어부들을 평온한 위엄으로 복종시키셨다
-> 갈릴리 바다의 폭풍우 속에서도 편히 주무셨다

* 평화의 원천 : 주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고 신뢰
->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형성된 주님을 닮은 인격은 이 세상 어떤 일들로도 그 마음의 평화가 깨지지 않는다.

*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입으로는 평화를 외치지만 평화가 실현되지 않는 까닭?
=> 세상 사람들의 인격이 평강을 담아낼 그릇이 되지 못하기 때문!!
-> 이사야 32:17
정의는 평화를 열매 맺어서 영원히 평화롭고 안전하게 만들 것이다.
=> 이 구절을 통해 주님은 "의가 없는 평화(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평화)는 아무 의미가 없는 거짓 평강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 예수님이 심판을 당하실 당시, 원래는 그토록 사이가 나쁘던 헤롯과 빌라도가 예수님을 잡아 처형하는 일 앞에서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잠시 친구가 되었다.
-> 그러나 이는 거짓 평강이다 (의가 없기 때문)


2. 평강의 수여자 예수!
(Jesus is the Giver of Peace)

* 평강은 오직 주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선물
-> 부활하신 후 제자를 찾으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심
-> 말씀하시고 나서 창에 찔리신 옆구리와 못박혀서 구멍 나신 손을 보여주심
=> 이와 같이 상하신 몸을 보여주신 의도는? :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강은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이렇게 처참한 고통을 모두 겪으시면서 얻으신 평강이다는 걸 말씀하신 것이다!
=> 예수님이 이처럼 보여주셨듯이... 댓가 없는 평화는 없다!

* 댓가 없는 평화는 없다!
-> 세상적인 시각으로 봐도,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는 과거의 전쟁들과 그를 통해 죽고 다친 수많은 사람들이 치른 댓가를 통해 얻은 것이다.
-> 사람들은 입으로는 평화를 외치지만, 그 댓가를 치르려고는 하지 않는다.
==> 상황을 붙드는 자에게는 평강이 없고, 말씀을 붙드는 자에게는 평강이 있다!

* 목사님의 삶 속에서 평강을 주었던 성경 구절
-> 빌립보서 4:7
그리하면 모든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 대학 1학년 때 IVF 에 가입하셨을 때 4학년 선배님이 선물해주신 책갈피에 써 있던 말씀
-> 대학 졸업 후 아버님의 사업 실패, 신혼 때 셋방 살이와 넉넉하지 않았던 형편 등 연이은 고난의 와중에도 이 말씀을 붙들면서 평강을 계속 유지하실 수 있었다고 한다.
=> 고난을 당하고 마음 속 평강이 사라질 때, 단지 상황이 더 나아지고 넉넉해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는 내 자신이 하나님 말씀을 꼭 붙들고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보자!
=> 그렇게 하면 주님께서 약속하신 평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상황/형편을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인격 자체를 변화시키고 싶어하신다!
(평강은 밖에서 안으로 오는 게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3. 평강의 명령자 예수!
(Jesus is the Commander of Peace)

* 찬송가에서 전주가 하는 역할
-> 코람데오 찬양대 지휘자 박집사님 말씀, "찬송가 앞의 전주는 우리에게 그 곡에 대한 많은 정보를 줍니다"
-> 예수님은 우리에게 전주와도 같은 분이시다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알려주시는...)

* 예수님이 우리에게 평강을 주신 이유
=> 우리로 하여금, 평강을 가지지 못하고 아웅다웅 싸우는 이 세상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에게 평강을 전파하기를 원하시기 때문!
-> 고린도 후서 5:18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그분과 화목하게 하시고 또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 마태복음 5:9
복되도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여,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릴 것이다.
-> 불화를 조장하는 자들은 마귀의 아들들이다.

* "화평" 이라는 단어의 한자 풀이
-> 화 : "벼 화" + "입 구"
-> 평 : 공평할 평
->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쌀을 나눠주는 것
-> 그러나 사람의 관점으로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사람들을 공평하게 창조하지 않으신 것처럼 보인다.

* 세상은 과연 공평한가?
-> 세상에는 부자, 가난한 사람, 신체 건강한 사람, 장애인 등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조건에 있지 않는 불균형이 심하게 보인다.
-> 이러한 현실에 대해 세상의 관점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두 동의할 만한 명쾌한 답을 얻기는 힘들다.
-> 그럼 만약 모든 사람들의 출발점이 같다면, 사람들이 화평하게 살 수 있을까?
-> 그렇지 않다. 처음에는 화평이 유지되다가도 나중에는 어떻게든 차이가 생기고 그 차이로 인한 갈등이 생길 것이다.

*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공평함
-> 비록 사람들의 처음 출발점은 다르더라도 살아가면서 점점 비슷해지는 방향으로 인도하시는 것으로 보인다.
-> 율법 중... 포도원, 밭의 주인들에게 모든 수확물을 다 거두지 말고 일부는 못가진 자들을 위해 남겨두라는 명령

* 우리가 열심히 살고 돈을 벌어야 하는 목적
=>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하기 때문!
-> 가진 자들은 못가진 자들을 섬겨야 하는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 지금 이 세상에는 한 끼 먹을 식사가 부족해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음을 명심하라.

* 내가 현재 가진 것이 없어서 남을 돕기 힘들다?
=>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억하라.
-> 주님이 회중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라고 명하시자 제자들은 한 사람 먹을 양의 음식밖에 없다면서 그 음식을 주님 앞에 가지고 나왔다.
=> 주님은 우리로부터 기적을 일으킬 근거(씨앗)를 제공받으신 후에 기적을 일으키신다!

* 평화를 얻기 위해 조심해야 할 정말 중요한 한가지 : 말조심
->늘 잘못된 말과 소문이 분란을 조장한다.
-> 가슴 아픈 실화 소개...
-> 6.25 사변 기간 중... 여동생과 오빠가 같이 살았는데, 병든 오빠의 약값을 벌기 위해 여동생이 술집에 나가 돈을 벌어서 오빠의 병을 다 고칠 수 있게 되었다.
-> 전쟁 직후... 남매는 한 교회에 나가서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한 교인이 그 여동생이 예전에 술집에서 일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교회 내에 이 여동생에 대한 소문과 험담을 퍼뜨려서 교회 내에서는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될 정도였다.
-> 수치심을 이기지 못한 오누이는 함께 목숨을 끊어버리게 되었다...
-> 오누이의 장례식 때... 이들이 다녔던 교회의 담임목사님의 말씀..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서 주님을 뵐 때, 주님이 "너는 세상에서 살 때 양떼를 얼마나 잘 먹이다 왔느냐" 라고 물으시면 목사님은 "저는 양떼는 없었고 이리떼만 먹이다 왔습니다" 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고 한탄하심.
=> 우리는 마치 이리떼처럼 남의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서 그 사람의 영혼이 황폐하게 될 지경으로 만들어놓지는 않는가?
-> 헬라어로 악마는 Diabolos 인데, 이 단어는 원래 "중상자, 모략자" 라는 뜻이다.


4. 맺는 이야기

* 앞서 본 사진들과 다른 두 장의 사진들 감상
-> 이 사진들 역시 퓰리쳐상 수상작들이다.
-> 첫 번째 사진 : 워싱턴 DC 에서 퍼레이드 도중 한 아이가 인파 속에서 길 안으로 불쑥 나오자, 한 경찰관이 허리를 숙이고 다장하게 아이와 이야기를 하는 사진
=> 이 사진 속의 경찰관처럼, 예수님은 마음대로 불쑥불쑥 움직이는 우리에게 자애로운 모습으로 다가오셔서 우리에게 이야기 하신다.
-> 두 번째 사진 : 2차대전 당시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 전쟁 중... 참혹하고 격렬했던 유황도 전투에서 미군이 승리한 후 승리의 깃발을 세우는 사진
-> 이 승리의 깃발을 세우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했다.
=> 희생 없는 평화는 없다. 누군가 희생해야 한다면, 예수님 믿는 우리가 나서서 희생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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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December 2009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설교 제목 : 주님 오심은
설교 본문 : 누가복음 4:18~19

주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께서는 포로 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못 보는 사람들에게 다시 볼 수 있음을, 억눌린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0. 여는 이야기

* "12월은 다른 세계의 달이다" 라는 말이 있다.
-> 다른 달들 : 이번 달에는 뭐 할까? (미래에 초점)
-> 12월 : 올해는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나? (과거에 초점)

* 마음의 풍요를 얻는 두 가지 방법
->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 인간은 사랑 받고 사랑 주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다.

* 소유를 통해 얻는 기쁨 vs 주는 기쁨
-> 소유 통해 얻는 기쁨 : 시간이 지나면 퇴색, 소멸
-> 주는 기쁨 :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음

* 12월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 있는 달이다
-> 국민일보에 실린 글 (엄마와 아이의 대화)
- 아이 : 엄마, 왜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나요?
- 엄마 :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이니 사람들이 기뻐하고 축하하는 거야.
- 아이 : 엄마, 그럼 예수님도 우리 때문에 기뻐하실까요?
- 엄마 : ...


1. 오늘 본문 말씀의 의미

* 예수님이 그 많은 이사야서 구절 중에 오늘 본문 내용의 구절을 선택해서 읽으셨던 이유는?
1) 메시아가 예수님 자신이심을 암시
2) 앞으로 그 사역에 전심전력을 다하실 것임을 천명하심

* 예수님께서 행하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역(요한복음 21:25)을 한 마디로 요약한 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이다.
-> 요한복음 21:25
이 밖에도 예수께서 행하신 다른 일들이 많이 있으나 그 모든 것을 낱낱이 다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그 기록한 책들을 다 담아 두지 못할 것입니다.

* 희년(주의 은혜의 해; Jubilee)
->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해
-> 안식년(7년째)을 7번 지내고 난 바로 다음 해(50년째 해)
-> 희년에는 빚을 탕감해주고 농사도 쉬고 땅과 집을 원주인에게 돌려주며 노예를 해방시켰다.

=> 예수님은 이 땅에 영적인 희년을 선포하러 오신 것이다!
-> 예수님이 선포하신 참된 자유와 회복의 희년은 단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사회와 역사에 실제로 적용된 희년이었다.
=> 예수님은 미래의 소망을 주셨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당시 발붙이고 살던 이 땅에서 우리 인간을 자유케 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었다.


2. 영혼 구원 + 이 땅에서의 삶의 회복

* 마가복음 2장에서 중풍환자를 고치실 때 명확히 드러나는 예수님의 사역
=> 영혼 구원 ("네 죄가 사함을 받았다" 선포) + 이 땅에서의 삶의 회복("중풍병을 고쳐주심")

*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받은 우리의 사역
-> 비록 예수님은 이 땅에 더이상 계시지 않지만,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다.
->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받아 우리는 영혼 구원과 이 땅에서의 삶의 회복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 그러나... 이 땅에는 이 두 사명을 조화롭게 추구해나가는 교회가 많이 없다.

* 영혼 구원만 강조하는 교회의 경우
-> 교회 안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임. 교세 확장
-> 그러나 모든 역량이 교회 안에서 소진됨
-> 사회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만 뜨겁고 교인들끼리만 서로 위하다 보니 사회의 손가락질 받는 경우가 많다.

* 삶의 회복만 강조하는 교회의 경우
-> 헌신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교인들의 현실적 삶의 조건이 고려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교인들이 모이지 않아 재정 악화... 사명 지속이 힘든 경우가 많다.
-> Washington DC 의 Redeemer Church
- 부랑자들 많고 위험한 Washington DC 에서 사역 시작
- 성도 수는 약 120 여명
- 지난 30년간 아무 댓가나 조건 없이 꾸준히 봉사와 헌신을 통한 사역
- 그래서 교인 수가 많지 않다.
- 교회에서도 아무나 받지 않는다 (3~4개월 가량의 제자 훈련 거쳐야 하고 서약식을 거쳐야 한다)

* 미국 내 대부분 한인 교회들의 경우
-> 영혼 구원을 더 강조하는 쪽에 가깝다
-> 교회 내에서는 교인들간의 영적 교제가 활발하고 영성을 가다듬는 일에 열심이다.
-> 그러나 사회로 나아가 가지지 못한 자들의 삶을 회복하는 일에는 소홀한 경우가 많다.

* 헨델 : 두 사역의 균형을 이룬 사람
-> 유명한 오라토리오 '메시아' 의 작곡자인 위대한 음악가
->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354 페이지에 달하는 '메시아'를 56세때 24일만에 완성
-> 신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을 탐구한 사람
-> '메시아'를 완성한 후 초연을 아일랜드 더블린의 출감자들을 보호하는 모임과 병원 사역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했다.
-> 그뿐 아니라 자선 음악회를 32회나 했는데 자신이 직접 지휘를 맡았고 수익금을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
-> 그는 진정으로 구원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사람이었다.


3. 기독교 영성에 관한 이야기들

* 기독교 영성에 대한 한 목사님의 말씀
-> "기독교 영성은 종의 형체를 가진 나사렛의 한 가난한 사람의 영성이다!"
-> "그러므로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병든 자를 고치고, 버림받은 자의 친구가 되고, 화평케 하는 자에게 복을 내린 그 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다."

* 강아지를 사러 간 소년 이야기
-> 한 소년이 강아지를 사러 가서 강아지를 고르는데, 다른 귀여운 강아지들은 제쳐두고 아무도 사려하지 않는 절름발이 강아지를 골랐다.
-> 주인이 다른 강아지를 사는게 좋지 않겠냐고 권유했지만 소년은 웃으며 자기는 그 절름발이 강아지가 제일 좋다며 그 강아지 값을 치르고 가게를 나갔다.
-> 가게를 나가는 소년의 모습을 본 주인은 소년의 한 다리가 의족임을 알아차리고는 숙연해졌다.
=> 그 강아지의 처지를 소년은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 우리는 그들과 다르지 않다
-> 죄에 물든 우리의 본성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다가가기가 쉽지 않게 만든다.
->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본성을 벗어난 삶을 살라고 한다.
-> 우리 역시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임을 늘 기억하라...

* 미국 대학생 빌 이야기
-> 빌이라는 지저분한 대학생이 있었다. 그는 늘 맨발로 다녔고 매우 지저분한 행색이었다.
-> 그러던 어느날 빌이 미국 중산층이 다니는 한 교회에 들어왔다.
-> 뒤쪽과 중간에 빈 자리가 없자 그는 앞으로 걸어나와 강단 앞의 복도에 털썩 주저앉았다.
-> 예배를 보던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이 불편해지고 속으로 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 목사님 역시 어쩔줄을 몰라하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 그러자 중간에 앉아있던, 그 교회에서 존경받는 노인이 일어나서 빌에게 다가가 그의 옆자리 바닥에 자신도 털썩 주저앉았다.
-> 이어서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한 마디를 하셨다.
-> "여러분은 오늘 제 설교를 금방 잊으실 지 몰라도, 오늘 보신 이 장면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4. 맺는 이야기

*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거리 풍경
-> 거리마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아름다운 장식들로 가득하다.
-> 그러나 모두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춥고, 외롭고, 병들어가고 있다.

* 부드럽고 고운 손은 과연 좋기만 한 걸까?
-> 한 목사님의 말씀 : "나는 결코, 남을 섬긴 적이 없는 더렵혀지지 않은 부드럽고 고운 손을 내밀어서 예수님의 못박힌 손을 만지지는 않을 것이다."
-> 과연 예수님은 부드럽고 고운 손을 가진 우리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실까?
-> 히브리서 6:10
이는 하나님이 불의하시지 않으므로 여러분이 성도들을 섬겼을 때와 또한 섬길 때 여러분의 행위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보여 준 사랑을 잊지 않으십니다.
=>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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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November 2009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설교 제목 : 인생 최고의 사명
설교 본문 : 마태복음 28:16~20

열한 제자들이 갈릴리로 가서 예수께서 일러 주신 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를 뵙고 경배드렸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의심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다가오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내게 주어졌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0. 여는 이야기

* 베스트셀러 "연탄길"에 수록된 글 글... "아름다운 이별"
-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되었다.
- 겨울을 넘기지 못한다는 시한부 진단을 받은 할머니를 위해 초여름까지 겨울옷을 입고 지낸 한 가족의 할머니에 대한 사랑을 담은 실화라고 한다.
-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같은 이야기

* 내 목숨을 바쳐 희생할 수 있는 사람/사명이 있으면 그 사람의 인생은 행복한 것이다.
- 대표적인 예 : 소방관
- 남들은 모두 불을 피해 도망치는 상황에서 한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
- 350여명의 소방관들이 이미 무너지고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해내다가 산화...
-> 우리는 그들을 영웅이라 부른다.
=> 크리스천으로서의 우리의 영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 요한복음 10:11~15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놓는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들도 자기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가 양들을 물어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달아난 것은 그가 삯꾼이므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해 내 생명을 내놓는다.
=>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따라 영웅이 되라고 하신다.

*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상 최대의 사명 : Make a disciple (제자 삼으라)
- 본문 말씀에 사용된 4개의 동사는 다음과 같다 (3개의 분사: 주동사를 보조 & 1개의 주동사)
- 가라(분사) / 세례 주라(분사) / 제자 삼으라 (주동사) / 가르치라(분사)


1. "가라!"

* 이 명령에 담긴 뜻 : 지금 네 자리가 편하다고 그 안에서 안주하지 말라
- 크리스천에게는 교회 안이 가장 편하다.
- 그러나 우리는 교회 밖의 비신자들에게 기꺼이 다가가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가?
- 현재 나의 신앙생활의 주된 활동무대는 교회 안인가? 교회 밖인가?
- 나는 일주일동안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을 얼마나 만나는가?
-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그들을 대하는가?

* Rick Warren 목사님의 크리스천 분류
- 세상에는 두 종류의 크리스천이 있다 : Worldly Christian / World-class Christian
- Worldly Christian :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 ("me-first" faith)
- World-class Christian : 남을 섬기는 크리스천. 자신을 통해 주님이 이웃과 세상을 어떻게 변회시키실지를 늘 생각하는 사람들

* 목사님의 우리 교회 성도들을 위한 기도 제목 두 가지
1) QT(Quiet Time) 를 할 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
- 목사님의 말씀에 의존해서 1주일 동안 세상과의 싸움을 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2) 한 번씩은 단기 선교를 다녀와 볼 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
- 이러한 기회를 통해서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느껴볼 수 있기 때문에

* 사명에 대해 ,비전에 대해 이론적인 이야기나 탁상공론에 그치지 말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2. "세례를 주라!"

* 이 명령에 담긴 뜻 : 더 넓은 의미로는 "복음을 전해 예수를 믿게 하라" 라는 의미

*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가 필요하다.

1) 우리 자신이 복음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 요즘엔 성경에 대해 정말 무지한 기독교인들이 많다.
ex. 쟌다르크(Joan of Arc) 가 노아(Noah's Ark 를 만든)의 아내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다!
- 내가 진정 구원받은 크리스천이라면 복음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 복음의 핵심은 무엇인가 ? ==> 나는 죄인이고, 따라서 나는 그 죄값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인데,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셨고,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영접한다면 더 이상 그 죄의 형벌을 당하지 않고 하나님께 구원을 받는다. 차별 없이, 그 누구라도!

2) 우리 자신의 구원에 대한 간증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 베드로전서 3:15
오직 여러분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여러분이 가진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 누군가가 우리 자신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에 대해 물어본다면 바로 해줄 수 있는 (개인적인 간증을 포함한) 대답을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3) 우리가 믿는 복음을 (우리의 삶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 오늘날의 세계는 우주여행, 인간복제, 인공지능 로봇 등이 현실에 등장하는 시대이지만,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영적인 시대라고 할 수 있다.
- 신비주의, 영적 체험 등에 목말라 하고 그러한 경험들을 간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 얼마 전 신문 보도... 갓 태어난 아기의 몸에 코란이 써있었다고 한다.
그걸 보고 사람들은 이 아이가 알라가 내린 선물이라고 하며 경외함
- 아프리카의 5세 아이가 이슬람교 율법사들보다 더 코란 강해를 잘해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이슬람 부흥회를 한다고 함
- 남미 쿠스코, 세계 악령 숭배 집회
->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신비한 현상들만 쫓아다닐 뿐 진리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생명이 없는 허상만 쫓을 뿐...
=> 우리는 그들에게 진리를 보여줘야 한다. 어떻게? 실제 삶을 통해서 보여줘야만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 하지만... 그들에게 우리의 삶을 통해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우리 안의 이기심 때문)


3. "가르쳐 지키게 하라!"

* 이 명령에 담긴 뜻 : "복음을 받고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의 신앙이 착실히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라" 라는 의미

* 멘토(mentor) : 삶의 길잡이, 정신적 스승
- 우리가 그들의 영적인 멘토가 되어야 한다.
- 과연 우리 주변에는 힘들때마다 우리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고 같이 기도를 청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 자녀들은 어떤가? 요즘에는 자녀들도 부모에게 고민을 상담하기 보다는 친구들을 찾는 경우가 많다.
- 즐거울 때 같이 농담하고 지내는 사람은 많아도, 고민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4. "제자 삼으라!" =>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대의 사명

* 과연 내 주변에는 내 덕분에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있는가?
- 한 가지 꼭 명심할 것 : 전도의 사명을 내일로 미루지 말아라!
- 예화 : 늘 남을 돕겠다는 결심을 어릴 적부터 하다가 그 꿈을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에는 한 번도 남을 본격적으로 돕지 못하고 눈을 감게 된 한 변호사의 이야기...
- 우리는 어떠한가? 성령의 감화를 받고 새로운 마음을 먹고 남을 돕겠다는 결심을 했다가도, 교회 밖으로 나가서 현실 속에서 부대끼다 보면 그 결심을 내일로, 훗날로 점점 미루지 않는가?

* "제자 삼으라!" 는 명령은 단순한 제안(suggestion) 이 아니다.
=> 이 명령은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commision) 이다!
-> 목사, 선교사들에게만 주어진 명령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명령이다.

* 우리 주변에 있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우리에게 물으실 수 있다
- 에스겔 3:18
내가 악한 사람에게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 라고 말했는데 네가 그에게 깨우쳐 주지 않거나 또는 악한 사람이 자기의 악한 길에서 떠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네가 경고하지 않으면 그 악한 사람은 자기 죄로 인해 죽을 것이고 내가 그의 피에 대해 네게 책임을 추궁할 것이다.
=> 어떤 사람에게는 내가 그 사람이 알고 있는 유일한 크리스천일 수도 있다!
- 이 사명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당신께서 제 삶에 보내주신 사람, 제가 주님에 대해 이야기해줘야 하고 주님의 제자되게 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인도해주시옵소서.

* 사명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
- 요한1서 5:12
아들을 모신 사람은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지 않는 사람은 생명이 없습니다.
-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사명이 있는 사람에게는 풍성한 삶이 있고, 사명이 없는 사람에게는 풍성한 삶이 없다!
- 다니엘서 12:3
지혜로운 사람은 하늘이 밝게 빛나는 것처럼 빛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을 의로 이끄는 사람은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이다.
->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모두가 빛나는 영웅이 되기를 원하신다.
=> 주님께서 맡기신 지상 최고의 사명을 우리 마음속에 간직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 순간순간 하나님이 만나게 인도하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도록 노력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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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November 2009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설교 제목 : 정복해야 할 두 가지 감사
설교 본문 : 에베소서 5:18~20
또한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잘못하면 방탕에 빠지기 쉽습니다.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십시오. 여러분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께 찬송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일에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고


0. 여는 이야기

* 한 교회의 목사님이 오랜만에 교회에 나온 청년과 나눈 대화 내용
- 목사님 : ㅇㅇ 형제, 이제는 교회에 꾸준히 열심히 다녀서 주님의 군사가 되셔야죠.
- 청년 : 저는 이미 주님의 군사인데요.
- 목사님 : 아니, 추수 감사절때랑 신년 윷놀이 할 때 때고는 교회에서 전혀 보지 못했는데 무슨 말인가요?
- 청년 : 쉿.. 저는 주님의 비밀 공작원이라 눈에 안 띄게 다닙니다..

* 그리스도인의 성숙/미성숙을 구별할 수 있는 척도
- 여러가지 척도들이 많다 (순종, 인내, 사랑, 용서, 절제, 헌신, 충성 등등)
- 그 중 오늘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중요한 척도는 바로 "감사" 이다.

* 감사가 중요한 이유
- 하나님을 위한 신앙, 순종, 신뢰 등의 모든 척도가 한꺼번에 이 감사라는 척도 안에 들어있기 때문.
- 감사는 성령 충만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 미국에 살다 보면 살아가면서 "Thank you" 라는 말을 수도 없이 한다.
-> 그러나 정작 감사해야 할 때 우리의 입에서 감사의 말이 흘러나오나?


1. 우리가 정복해야 할 감사 (1) : 단순한 감사

* 우리 주변에서 늘 눈에 띄는 것들
- 가족, 직장, 교회 등등
- 이러한 것들에 늘 감사하기가 쉽지 않다.

*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온 나치 수용소 생존자와 오프라의 대화
- 오프라 : 그 끔찍한 수용소 생활을 겪은 후에도 아직 감사의 말이 나옵니까?
- 생존자 : 예. 그와 같은 일을 겪은 이후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살아있어줘서 감사합니다." 또는 " 인간이어서 감사합니다." 라고 늘 말하게 되었습니다.

* 죽음의 문턱에 가본 사람들은 단순히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리게 된다.

* 교통사고로 크게 다친 이지선 자매의 간증
- 그 일 이후 어디서든 감사할 이유를 찾게 되었다.
- 남들과의 비교로 얻어진 행복이 아닌 절대적 행복을 찾아야 한다.
-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늘 하는 작은 일들 (걸어서 화장실 가기, 손으로 글씨 쓰기) 에서 감사를 느끼게 되었다.
=> 이러한 일들에 감사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이러한 일들을 당연한 일로 여기느냐, 아니면 특별한 일로 여기느냐에 달렸다.

* 일상에 대한 감사
- 소설 "가시고기" 중... 당신이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내일입니다.
- 목사님이 새벽 기도를 하실 때 첫 기도 : 오늘 새로운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특별한 것만 찾으려고 하다 보니 늘 우리 곁에 있는 사물과 사람들 (공기, 가족 등)에 대해서는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오는 게 쉽지 않다.
=> 감사 : 고마워 하기로 결심한 사람이 "선택"하는 의도적 감정!


2. 우리가 정복해야 할 감사 (2)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 감사

* 세상을 지배하는 규칙 : give and take
- 이 규칙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세상 사람들의 눈총을 받게 된다.
- "~때문에 감사합니다" 와 같은 조건적인 감사가 일반적이다.
-> 그러나 성경을 보면 주님은 우리가 조건적인 감사를 넘어서 범사에 감사하기를 원하신다.
-> 데살로니가 전서 5:18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 박노해 시인 이야기
- 온몸으로 체험한 치열한 삶의 이야기를 시로 표현한 시인
- 수 년간 생활한 침침한 관 속같이 좁은 감옥 독방을 "감은암(감사와 은총의 암자)"라고 이름 지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 감사는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인가?
=> 그렇지 않다! 우리 인간이 누구든 할 수 있기 때문에 주님이 명하신 것이다.

* "어려운 만남 주셔서 겸손케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 인간 관계에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한 성도의 추수 감사절 감사 기도 제목

* 바울의 감사
- 고린도 후서 12:7~8 (원래 오늘 본문으로 생각했던 구절)
받은 계시들이 지극히 큰 것으로 인해 나로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습니다. 이는 나를 쳐서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이 내게서 떠나도록 주께 세 번이나 간구했습니다.
- "육신의 가시" : 육신의 질병 (간질 또는 안질로 추정)
- 육체를 고통스럽게 하고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되는 육신의 질병을 없애달라고 주님께 거듭 기도
- 이처럼 간곡한 기도에 대한 주님의 대답 :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고린도 후서 12:9~10)
그러나 그분은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왜냐하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약한 것들에 대해 크게 기뻐하며 자랑할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약한 것들과 모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경 가운데 있으면서도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하기 때문입니다.

* 한 목사님의 하나님에 대한 설교 내용
- God is perfect in His love.
- God is infinite in His wisdom.
- God is a complete sovereign in His control.
=> 우리 삶의 고난은 주님의 완벽한 계획 하에 일어나는 것이다. 고난이 내게 온다고 해서 주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3. 맺는 이야기

* Fanny Jane Crosby : 찬송가 645곡 중 14곡을 지은 사람
- 어렸을 때 의사의 실수로 맹인이 됨
- 자신의 맹인이 됨에 대한 한 마디 말 : 만약 나를 소경이 되게 한 의사를 오늘 만난다면 나는 그 분께 감사할 것이다. 맹인이 된 덕분에 주님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 "Attitude is more important than the fact." 를 알 수 있다.

* 어떤 목사님의 설교 제목에 얽힌 이야기
- 다른 교회를 방문해서 설교하기로 하고 그 교회 직원과 전화 통화 함
- 직원 : 목사님, 설교 제목이 어떻게 되나요?
- 목사님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 직원 : 그게 끝인가요?
- 목사님 : 그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
- 설교를 한 당일날.. 주보는 "설교 제목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 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 비록 직원의 실수로 이런 제목이 생겼지만, 이는 맞는 말이다. 여호와가 내 목자시니 우리는 더 이상 필요한 게 없다!
=> 기억하자. 여호와 하나님은 허허 벌판인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셨다. 걱정하지 말고 감사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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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November 2009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설교 제목 :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설교 본문 : 마태복음 28:1 ~ 10


0. 여는 이야기

* 목사님의 부러진 안경
-> 오늘 아침에 안경 다리가 부러져서 스카치테이프로 감으셨음
-> 여벌 안경이 교회 서랍에 있는 줄 알고 나오셨지만 막상 나와보니 없었다..
-> 점점 나이가 들수록 이렇게 점점 기억이 깜박깜박해지는 일들이 많아짐
-> 교인 이름, 전화번호 등등이 생각 안 날 때도 많으심
-> 다른 사람과 장시간 이야기를 한 다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나기도 하심!
=>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큰 일이 우리 삶에 자주 일어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 크리스천이 중대한 일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 그러나 하나님 말씀이 생각이 안나서 세상의 기준과 가치관,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 고난의 상황에서 하나님 말씀이 생각 안나면 고통과 절망 밖에 없다.


1. 부활 예고를 잊어버린 사람들

*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 이들은 향품(시체에 발라서 시체의 부패를 지연시키는 물질)을 준비해서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왔다.
-> 즉, 이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러 온 것이 아니라 죽으신 예수님의 시체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 여인 셋이서 새벽에 로마 군병들이 지키는 무덤에 찾아온 것도 대단한 용기와 결심을 필요로 한 일이었을 것이다.
-> 그러나, 이들의 신앙에는 부활 소망이 결여되어 있었다.
=> 이들은 주 예수님이 생전 여러 번 예고하신 "죽은 뒤 사흘만의 부활"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 제자들
-> 이들 역시 예수님의 부활 예고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곧 부활하실 예수님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도 잡혀 죽임을 당할까봐 도망쳐서 숨어 있었다.
->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먼저 목격한 여인들의 흥분된 증언에도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 이유야 어찌되었건 간에 (민심 동요 방지 목적), 예수님의 부활 예고를 오히려 잊지 않고 예민하게 반응한 사람들은 바로 대제사장 무리들이었다.
=> 주님과 항상 가까이 있던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까맣게 잊고 있었고 주님을 대적하는 세력은 주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다!
=> 아이러니!
=> 그러나 이것이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아닌가?

* 오늘날의 기독교인들
-> 요한복음 13:34~35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 위의 성경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랑"은 기독교의 대명사이다.
-> 그러나... 사랑 실천에 있어서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헌신적으로 임하는가?
-> 한 아프리카 선교사님의 증언 : "아프리카에는 수많은 비기독교 휴머니스트들이 자신의 삶을 바쳐가며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들처럼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기독교인들의 수는 이들보다 훨씬 적습니다..."


2. 두려움이 변하여 큰 기쁨으로!

* 여인들의 심경
-> 두려움, 낙심, 절망 가운데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감 -> 큰 지진과 천사를 목격 -> 두려움이 점점 큰 기쁨으로 바뀜 (본문 8절)
-> 지진과 천사를 목격했을 당시에는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상태였다.
-> 이 때 그들의 신앙은 "죽음, 절망의 신앙"에서 "부활, 기쁨의 신앙" 으로 바뀐 것이다.
-> 누가복음 24:5~8
여인들은 너무 무서워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살아 계신 분을 왜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찾고 있느냐?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너희와 함께 계실 때 하신 말씀을 기억해 보라. '인자가 마땅히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3일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 고 하시지 않았느냐?" 여인들은 예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 이처럼 주님은 늘 자신이 당할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언급하실 때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실 것임을 말씀하셨다.
=> 고난과 부활은 동전의 양면!
-> 여인들이 주님이 늘 말씀하셨던 고난과 부활 예고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더라면, 주님이 십자가 고난을 보고 예언이 성취되고 있음을 깨닫고 부활을 기대하기 시작했어야 했다.
-> 그러나 그들은 이 예언을 완전히 까먹고 있었고, 부활의 날 천사가 주님의 부활 예언을 그들에게 상기시켜준 것이다.
-> 천사의 도움으로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예수님의 부활 예언을 다시 기억하게 되자 그들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기쁨으로 넘쳐나게 되었다.
=>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믿으면 우리에게는 기쁨이 회복된다! (얼굴이 펴지고 걸음걸이가 달라진다!)

* 현재 우리 교회 성도들의 모습
-> 많은 성도분들이 교회에 예배 드리러 오는 걸음걸이와 모습은... 거의 모든 분들이 현재 겪고 있는 삶의 어려움에 힘겨워 하고, 여러가지로 우울해 하고, 답답해 하는 표정과 태도였다.
-> 그러나 주님 말씀을 기억하고 믿으면 우리 삶의 고난과 근심 걱정을 소망으로 바꾸고 우리의 좌절을 새로운 삶의 용기로 바꿔 나갈 수 있다!

* 기쁨을 얻기 위해 기억해야 할 말씀들
-> 요한복음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
(우리 마음 속의 근심을 기쁨으로 바꿔보자.)
->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잘 묵상해서 상황 앞에서 무기력한 내 자신에 실망하다가도 새로운 용기를 얻어보자.)
-> 로마서 8:1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의 발목을 끈질기게 잡고 늘어지는 마음의 짐... 바로 "죄책감"! 이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해주는 말씀이다.)

* 우리의 신앙생활의 성패
-> 내 현재 상황 안에서 주님 말씀을 어떻게 붙들고 있느냐에 달렸다.
->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죽어서 시체가 썩고 있던 나사로도 벌떡 일어난다 (시체의 신앙이 산 자의 신앙으로)
=> 예수 그리스도 : 부활의 첫 열매
=> 우리도 예수님처럼 마지막 때에 부활할 것이다!

* 사울과 다윗의 차이점
-> 사울 : 그의 우환은 다윗이었다. (다윗을 질투.. 다윗 때문에 불안해 함) -> 늘 다윗을 생각함
-> 다윗 : 그의 우환은 사울이었다. (사울 왕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절체절명의 형편) -> 그 상황에서 그는 사울 대신 하나님을 생각함!
=> 끊임없이 다윗을 묵상한 사울 vs 끊임없이 하나님을 묵상한 다윗 !
=> 결국 다윗은 위기를 모두 벗어나고 승리자가 될 수 있었다.


3. 맺는 이야기

* 폐암으로 고생하다 소천하신 한 환우분 이야기
->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져서 나중에는 가족들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기 시작하심
-> 그 분이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쓰신 일기 중... "하나님, 다른 것은 다 잊어도 하나님만은 잊지 않게 해주세요..."
=> 여러분은 늘 하나님을 기억하고 사십니까?

* 크리스천 생활의 관건
=>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는가?
=> 살아가면어 어떠한 판단이나 결정을 내릴 때에도 주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고 그에 합당한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가?
=> 매일 살아가면서 주님 말씀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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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ovember 2009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설교 제목 : 무덤조차 두려워하는 사람들
설교 본문 : 마태복음 27:62 ~ 66


0. 여는 이야기

* 할로윈 (Halloween)
-> 공포 컨셉으로 가득한 미국의 대중 명절
->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묘지, 흉가 등의 기괴한 모습으로 꾸미고 영화관에서 공포영화를 본다

* 예수님을 고발하여 죽게 만든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두려워하였다.
-> 이들은 놀랍게도 본문(62~66절)에 나온 요청(예수님의 무덤을 돌로 단단히 봉하고 경비병을 세워서 잘 지키라고 빌라도에게 부탁)을 안식일에 하였다.
(안식일에는 어떤 종류의 노동도 해서는 안된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로마 총독을 공적인 업무로 찾아가 접견함)
-> 그들은 일명 종교적 형식주의자(안식일 규례를 생명처럼 지키는 자들)인데, 도대체 어떤 이유로 자신들이 생명처럼 집착하는 안식일 규례를 어기면서까지 예수님의 무덤을 막는데 혈안이 되었었나?
-> 그들이 주장한 이유 (표면적인 이유) : 민심의 요동을 막기 위해
-> 본문 63~64절 : "총독 각하, 저 거짓말쟁이가 살아 있을 때 '내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라고 말한 것이 기억납니다. 그러니 3일째 되는 날까지는 무덤을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훔쳐 놓고는 백성들에게 '그가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났다' 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번의 마지막 속임수는 처음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거짓 이유에 불과했다! (진짜 이유는 곧 소개될 것임..)


1.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한 주장들 / 이 주장들이 틀린 이유

* 예수님 부활 후 제사장들의 부활 은폐 시도 (마태복음 28:11~15)
그 여인들이 길을 가는 동안 몇몇 경비병들은 성안으로 들어가서 대제사장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모두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은 장로들과 만나 계략을 꾸미고는 군인들에게 많은 돈을 쥐어 주며 말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고 말하라." 만약 이 소문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잘 말해서 너희에게 문제가 없도록 해 주겠다." 그러자 군인들은 돈을 받고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된 것입니다.

* 이후 오늘날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한 주장들이 많이 있었다.

1) 기절설
-> A.D. 70년 경에 쓰여진 코란에서 주장됨
->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의식을 잃고 기절한 것이라고 주장
-> 1982년에 출간된 책 "Holy Blood, Holy Grail" 에서는 총독이었던 빌라도가 제자들의 뇌물을 받고 예수님이 죽기 전에 십자가에서 끌어내렸다고 주장함
-> 19세기 신학자 칼 벤투리니 역시 같은 주장을 함

* "기절설" 의 모순
=> 현실적인 조건으로는 불가능한 시나리오
예수님이 그 모든 고난(모진 채찍, 가시 면류관,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심)을 겪으시고 난 후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허리에 창을 찔리신 후 물과 피를 쏟으신 후 사형 집행인들로부터 사망 선고를 받으시고 수의에 온몸이 꽁꽁 싸매어지신 후에 장례용 향유에 온 몸이 흠뻑 적시워지신 후... 3일간 음식과 물을 못 드신 상태에서 1톤에 달하는 무덤을 봉했던 돌을 혼자 움직이시고 나와서 경비병들을 때려눕힌 후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다?....... 이는 억지 주장이다.
=> 의학적으로 판명된 예수님의 죽음
의학자 윌리엄 D 에드워드는 한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로마 군병이 예수님의 허리를 창으로 찔렀을 때 쏟아져 나온 물과 피는 응고된 피와 혈청이 분리되서 나온 것으로, 오직 죽은 사람한테서만 가능한 현상이다" 라고 말했다.
=> 대제사장들의 말에서 드러나는 증거
본문 63절에서 "저 거짓말쟁이가 살아 있을 때..." 라고 말한 부분 : 이 말은 예수님이 확실히 사망했음을 이들이 확인했음을 의미한다.
이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이라 확인을 철저히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2) 도적설
->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치고 나서는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는 주장

* 도적설의 모순
-> 만약 그들이 시체를 훔쳤다면, 그들 자신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텐데 과연 그들이 그런 주장을 했을까?
-> 물론 그럴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없던 일을 지어내기도 하기 때문)
=> 하지만, 이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숨 걸고 증거하다가 차례차례 순교했다.
-> 이들은 예수 부활을 부인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는 협박을 받았지만, 그들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부활을 증거했다.
=> 사람은 자신이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지만, 거짓임을 뻔히 알고 있는 일에 대해서 목숨을 바치는 경우는 없다.
=> 예수님이 체포되실 당시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쳤던 제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순교자로 바뀔 수 있었던 원동력은?


2.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두려워한 진짜 이유

*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막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 했었다.
-> 그러나 오히려 예수님 부활의 확실한 증거를 만들어 준 꼴이 되었다.

* 그들은 왜 그토록 예수님의 부활을 막고자 했는가?
=> 예수님의 부활로 자신들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
=> 그동안 예수님이 옳았었고 자신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이 잘못된 일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되기 때문에

* 한 개의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서는 일곱 개의 더 큰 거짓말이 필요하다.
-> 만약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바로 인정했더라면 더 큰 거짓말을 안해도 되었을 것이다.


3.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이유

*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면 자신의 이성적, 합리적 사고가 무장해제 된다고 생각해서 자신 나름대로 예수님의 부활을 다양하게 부인한다.
-> 그리고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 사람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시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 예수님이 날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내 죄를 대속하셔서 나를 천국 갈 수 있게 해주신 것이니 이에 대해 사람들은 참 감사해한다.
=> 하지만 예수님이 그냥 자신의 죄를 짊어지고 무덤 속에 계속 죽은 채로 계셨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 예수님이 살아서 나오시는 순간, 그것은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내 자신의 인생의 주도권을 놓고 싶지 않고자 하는 자아의 몸부림인 것이다.

*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에 한 발만 담그고 있다.
=> 두 발을 다 담그면 지금까지 누리는 행복과 쾌락을 다 내려 놓아야 한다는 두려움에 두 발 담그기를 주저한다!


4. 맺는 이야기

* 밤길을 가다가 절벽에 떨어진 사람 이야기
-> 밤길을 가다가 발을 헛디뎌서 절벽에 굴러 떨어지다가 나뭇가지를 겨우 잡아서 매달리게 됨.
-> 그 때 주님이 그 사람 마음 속에 말씀하시기를 "나뭇가지를 잡고 있는 두 손을 지금 모두 놓아라."
-> 그 사람은 두 손을 다 놓으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을 무서워하여 절대 손을 놓지 못하고 밤을 지샘
-> 나중에 동이 트고 보니 그 사람은 이미 지면에 굉장히 가까운 위치에 있어서 그냥 손을 놓았으면 땅에 사뿐히 내려와서 갈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이었음

* 혹시 나는 무덤을 열고 나와 부활하신 주님과 맞닥뜨리기를 두려워하고 있나?
=> 주님 말씀을 온전히 따르기 위해 지금 내가 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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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October 2009

"내려놓음"의 저자 이용규 선교사님의 피츠버그 한인중앙교회 부흥회 중 주일 설교내용 요약

설교 제목 :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0. 여는 이야기

* 시편 37:5
당신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십시오. 또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 처음에 몽골에서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셨을 때... 그 당시에는 나중에 각국을 돌며 말씀을 전하고 책도 내게 되실 줄은 당연히 전혀 꿈도 못 꾸고 있었다.
->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 있었다.


1. 처음으로 중국 KOSTA (해외 유학생 기독교 집회)에서 설교하시게 된 경위

* 몽골에서 중국으로
-> 원래 선교사님은 몽골 국제대학교에서 몽골과 그 주변의 소수 민족 학생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고 계셨다.
-> 그러던 어느날, 선교사님이 몇 주동안 중국으로 파견되게 되셨다.
-> 그 무렵 중국은 노동절 휴일 기간(우리나라의 추석, 미국의 추수감사절에 비교되는 가장 큰 명절)이었다.

* 선교사님과 하나님의 (기도를 통한) 대화
-> 그러던 어느날 새벽, 선교사님은 주님이 부르시는 듯한 느낌을 받고 새벽에 잠에서 깨셨다.
-> 선교사님은 그 주에 북경에서 열리는 KOSTA 를 위한 중보기도를 하라는 음성을 마음 속에서 들으셨고, 또한 심지어는 선교사님더러 KOSTA 에 직접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음성까지 들으셨다.
-> KOSTA 의 규모와 위상 등을 생각하시고 압도되신 선교사님은 주님께 기도로 자신이 왜 그곳에 가기 꺼려지는 지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으시며 주님과의 대화를 시작하셨다.
-> 1) 저는 몽골 선교사이지 중국 선교사가 아닙니다.
-> 2) 노동절 휴일 기간에는 기차표를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 3) 저는 파송된 지 7개월 밖에 안된 무명의 선교사입니다. (KOSTA 설교자 섭외는 늦어도 3개월 전에는 다 끝나고 설교자분들은 대부분 굉장히 유명한 목사님이나 선교사님들이시다)
=> 한 마디로 요약 : "하나님! 저 바보되고 싶지 않습니다! 안됩니다!"
=> 그 때 선교사님의 기분 : 모세가 바로한테 주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명을 받았을 때 핑계와 변명을 늘어놓았던 것과 같은 느낌
=> 그런 직후 선교사님은 주님께 이렇게 다시 기도하셨다 : 그 곳에 가는 것까지는 제가 자발적으로 하겠지만, 가서 말씀 전하는 것은 제가 직접 나서서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

* 하나님의 역사하심
-> 기차표를 구하러 갔는데 정말 우연치고는 너무도 황당하게 표가 남아있어서 북경까지 가게 됨
-> 그리고 또 한 번의 우연으로 예전에 알고 지내던 선교사님을 북경에서 만나시게 됨
-> KOSTA 관계자였던 이 분은 선교사님에게 북경에 온 이유를 물으셨고, 선교사님은 잠시 주저하다가 기도 내용을 알려드림
-> 그래서 이 분의 소개로 KOSTA 의 여러 관계자들을 만나게 됨 ("팔복" 을 만든 김우영 감독 등등)
->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KOSTA 설교자들 중 한 분이 자신에게 할당된 1시간 중 30분을 선교사님에게 떼어주심
-> 그래서 1500 여명의 유학생 앞에서 설교를 하시게 됨
-> 설교 시작 말씀 : "내몽골에서 북경까지 오게 된 것은 여기 모이신 분들 중 누군가는 제 설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설교 끝나고 많은 학생들이 선교사님께 와서 "저 때문에 오신 것임을 확신합니다!" 라고 은혜 받았음을 고백
-> KOSTA 집회때 만나게 된 관계자분들의 권유로 책을 쓸 것을 생각하게 됨

* 중국 KOSTA 설교 후 많은 사람들이 했던 질문 : "선교사님은 어떻게 내 마음의 소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소리인지 사탄이 주는 소리인지 알 수 있으십니까?"


2.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 라디오 전파 :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늘 공중에 떠다닌다
-> 라디오를 구해서 주파수를 제대로 맞추면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

*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무서워한 나머지 주님과의 직접 소통을 거부했다.
-> 그래서 여호와->모세->아론->백성들 과 같은 식으로 주님의 말씀이 전달되었다.

*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의 핵심은 "교제" 이다!
-> "교제"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다.

* 하나님과 소통이 잘 안 될 때의 문제점
-> 기도를 오래 할 수 없다 (마치 벽 보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 이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 형성이 제대로 안 되어 있어서 생기는 것이다.
-> 한 자매의 예 : 부흥회 후 은사를 받아서 주님의 음성을 마음속에서 계속 들을 수 있게 됨. 주님은 그 자매의 생활을 상세한 부분까지 자상한 아빠처럼 말씀을 하심. 그 자매의 반응.. "하나님, 그동안 저한테 말씀 못해서 답답해서 어떡하셨어요?"

* 하나님과의 소통이 잘 안 되는 이유
-> 하나님을 우리 자신의 틀 안에 가둬놓으려 하기 때문
=>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 말씀하시고 이 말씀들은 성경을 통해 confirm 된다.


3. 하나님의 음성

* 위조 지폐의 예
-> 100$ 위조 지폐는 많다.
-> 1$ 위조 지폐는 없다.
-> 3$ 위조 지폐는 없다.
=> 진짜가 있어야 가짜가 있고, 중요한 것일수록 가짜가 많다.
=> 하나님의 음성과 혼동될 수 있는 사탄의 음성들이 들릴 수 있다.

* 주님의 종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의 주의 사항들
-> 1) 우리 안의 정결함과 순종하는 마음이 필요
-> 중요한 것은 "관계" 이다.
-> 우리가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만 제대로 있으면 시행착오 끝에 결국에는 올바른 길로 인도된다.
-> 2)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식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 예전 조선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한시(4언절구 등)의 형식으로 들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 듣는 사람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말씀이 들린다.
-> 3) 사탄이 주는 소리는 급하고 찌르는 형식과 내용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소리는 섬세하고 부드럽다 (평안한 가운데 조용한 확신)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평화가 밀려온다.
-> 그러나 하나님과의 교제가 부담스러워서 그 말씀에 귀를 닫으면 관계가 성장하지 않는다.
-> 4) 하나님 말씀을 듣고 싶은 마음이 단순한 호기심에서라면 들리지 않을 것이다.
-> ex. "일단 한 번 말씀해 보세요. 그 말씀이 내 뜻과 맞으면 거기에 따를게요." -> 이러면 절대 안들린다.
-> 우리는 자꾸 자신의 뜻만 앞세우기 마련이다...
-> 5) 내 안에 내 자신의 소리가 너무 크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 것이다.
-> 6)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싶으면 우선 주님께 고백해야 한다. "주님, 말씀해주세요. 100%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 사탄의 유혹 "미쳤어?" "네가 실력이 있냐, 능력이 있냐?" "사람들한테 광신도 취급 받으면 어떡할래?" 등등..
=> 이런 유혹에 넘어가 마음의 문을 닫으면 하나님 말씀이 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4. 응답되지 않는 기도에 대한 고민

*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해주시지 않음에 불만을 가지고 좌절한다.
-> 그러나 응답되지 않은 기도에도 그 의미가 있고 기도 응답이 늘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만은 아니다.

* 모세의 기도
-> 모세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대개 기도에 응답해주셨다.
-> 그러나 모세의 평생 소원인 "가나안 땅 입성" 에 대한 기도는 들어주지 않으셨다.
-> 배경 원인 : 민수기 20:1~13
->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자 모세와 아론에게 대들었을 때, 모세는 여호와의 명을 받고 바위를 두 번 쳐서 백성들과 가축을 위한 물을 내어줬으나, 여호와의 명령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바위에서 물이 나오는 기적에 대한 영광을 여호와께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이에 분노하셔서 모세와 아론이 가나안 땅에 입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그 후 모세가 가나안 입성을 열망하며 여호와께 기도를 드렸을 때 여호와의 대답 : 신명기 3:26 ("그것으로 충분하니 이 문제에 대해 내게 더는 말하지 마라." 즉, "모세야, 너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다.")
->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에 입성함.
=> 모세는 예비하는 자, 여호수아는 천국(약속의 땅)의 완성자로서의 사명을 각각 가진 것임
=> 이는 세례 요한(예비하는 자), 예수님(천국의 완성자)의 사명과도 같다.
=> 모세와 세례 요한은 멈출 줄 알았고, 그들이 가졌던 질문에 대한 해답은 예수님을 통해 제시되었다.
=> 응답되지 않은 기도들 안에는 주님이 당신에게 주신 사명이 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들어주시지 않는 것이고, 당신의 사명에 대한 기도는 들어주실 것이다)

* 히스기야 왕의 기도
->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듣고 죽도록 기도했는데 여호와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생명이 연장됨
-> 생명을 연장해서 얻게 된 아기 : 므낫세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독한 왕)
=> 기도 응답이 늘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만은 아니다!


5. 맺는 이야기

* 샘물교회 사건
-> 이 사건에 대해 선교사님이 들으신 주님의 음성, "죽음의 문제는 극복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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