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November 2009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설교 제목 :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설교 본문 : 마태복음 28:1 ~ 10


0. 여는 이야기

* 목사님의 부러진 안경
-> 오늘 아침에 안경 다리가 부러져서 스카치테이프로 감으셨음
-> 여벌 안경이 교회 서랍에 있는 줄 알고 나오셨지만 막상 나와보니 없었다..
-> 점점 나이가 들수록 이렇게 점점 기억이 깜박깜박해지는 일들이 많아짐
-> 교인 이름, 전화번호 등등이 생각 안 날 때도 많으심
-> 다른 사람과 장시간 이야기를 한 다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나기도 하심!
=>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큰 일이 우리 삶에 자주 일어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 크리스천이 중대한 일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 그러나 하나님 말씀이 생각이 안나서 세상의 기준과 가치관,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 고난의 상황에서 하나님 말씀이 생각 안나면 고통과 절망 밖에 없다.


1. 부활 예고를 잊어버린 사람들

*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 이들은 향품(시체에 발라서 시체의 부패를 지연시키는 물질)을 준비해서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왔다.
-> 즉, 이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러 온 것이 아니라 죽으신 예수님의 시체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 여인 셋이서 새벽에 로마 군병들이 지키는 무덤에 찾아온 것도 대단한 용기와 결심을 필요로 한 일이었을 것이다.
-> 그러나, 이들의 신앙에는 부활 소망이 결여되어 있었다.
=> 이들은 주 예수님이 생전 여러 번 예고하신 "죽은 뒤 사흘만의 부활"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 제자들
-> 이들 역시 예수님의 부활 예고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곧 부활하실 예수님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도 잡혀 죽임을 당할까봐 도망쳐서 숨어 있었다.
->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먼저 목격한 여인들의 흥분된 증언에도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 이유야 어찌되었건 간에 (민심 동요 방지 목적), 예수님의 부활 예고를 오히려 잊지 않고 예민하게 반응한 사람들은 바로 대제사장 무리들이었다.
=> 주님과 항상 가까이 있던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까맣게 잊고 있었고 주님을 대적하는 세력은 주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다!
=> 아이러니!
=> 그러나 이것이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아닌가?

* 오늘날의 기독교인들
-> 요한복음 13:34~35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 위의 성경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랑"은 기독교의 대명사이다.
-> 그러나... 사랑 실천에 있어서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헌신적으로 임하는가?
-> 한 아프리카 선교사님의 증언 : "아프리카에는 수많은 비기독교 휴머니스트들이 자신의 삶을 바쳐가며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들처럼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기독교인들의 수는 이들보다 훨씬 적습니다..."


2. 두려움이 변하여 큰 기쁨으로!

* 여인들의 심경
-> 두려움, 낙심, 절망 가운데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감 -> 큰 지진과 천사를 목격 -> 두려움이 점점 큰 기쁨으로 바뀜 (본문 8절)
-> 지진과 천사를 목격했을 당시에는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상태였다.
-> 이 때 그들의 신앙은 "죽음, 절망의 신앙"에서 "부활, 기쁨의 신앙" 으로 바뀐 것이다.
-> 누가복음 24:5~8
여인들은 너무 무서워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살아 계신 분을 왜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찾고 있느냐?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너희와 함께 계실 때 하신 말씀을 기억해 보라. '인자가 마땅히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3일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 고 하시지 않았느냐?" 여인들은 예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 이처럼 주님은 늘 자신이 당할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언급하실 때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실 것임을 말씀하셨다.
=> 고난과 부활은 동전의 양면!
-> 여인들이 주님이 늘 말씀하셨던 고난과 부활 예고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더라면, 주님이 십자가 고난을 보고 예언이 성취되고 있음을 깨닫고 부활을 기대하기 시작했어야 했다.
-> 그러나 그들은 이 예언을 완전히 까먹고 있었고, 부활의 날 천사가 주님의 부활 예언을 그들에게 상기시켜준 것이다.
-> 천사의 도움으로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예수님의 부활 예언을 다시 기억하게 되자 그들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기쁨으로 넘쳐나게 되었다.
=>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믿으면 우리에게는 기쁨이 회복된다! (얼굴이 펴지고 걸음걸이가 달라진다!)

* 현재 우리 교회 성도들의 모습
-> 많은 성도분들이 교회에 예배 드리러 오는 걸음걸이와 모습은... 거의 모든 분들이 현재 겪고 있는 삶의 어려움에 힘겨워 하고, 여러가지로 우울해 하고, 답답해 하는 표정과 태도였다.
-> 그러나 주님 말씀을 기억하고 믿으면 우리 삶의 고난과 근심 걱정을 소망으로 바꾸고 우리의 좌절을 새로운 삶의 용기로 바꿔 나갈 수 있다!

* 기쁨을 얻기 위해 기억해야 할 말씀들
-> 요한복음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
(우리 마음 속의 근심을 기쁨으로 바꿔보자.)
->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잘 묵상해서 상황 앞에서 무기력한 내 자신에 실망하다가도 새로운 용기를 얻어보자.)
-> 로마서 8:1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의 발목을 끈질기게 잡고 늘어지는 마음의 짐... 바로 "죄책감"! 이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해주는 말씀이다.)

* 우리의 신앙생활의 성패
-> 내 현재 상황 안에서 주님 말씀을 어떻게 붙들고 있느냐에 달렸다.
->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죽어서 시체가 썩고 있던 나사로도 벌떡 일어난다 (시체의 신앙이 산 자의 신앙으로)
=> 예수 그리스도 : 부활의 첫 열매
=> 우리도 예수님처럼 마지막 때에 부활할 것이다!

* 사울과 다윗의 차이점
-> 사울 : 그의 우환은 다윗이었다. (다윗을 질투.. 다윗 때문에 불안해 함) -> 늘 다윗을 생각함
-> 다윗 : 그의 우환은 사울이었다. (사울 왕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절체절명의 형편) -> 그 상황에서 그는 사울 대신 하나님을 생각함!
=> 끊임없이 다윗을 묵상한 사울 vs 끊임없이 하나님을 묵상한 다윗 !
=> 결국 다윗은 위기를 모두 벗어나고 승리자가 될 수 있었다.


3. 맺는 이야기

* 폐암으로 고생하다 소천하신 한 환우분 이야기
->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져서 나중에는 가족들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기 시작하심
-> 그 분이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쓰신 일기 중... "하나님, 다른 것은 다 잊어도 하나님만은 잊지 않게 해주세요..."
=> 여러분은 늘 하나님을 기억하고 사십니까?

* 크리스천 생활의 관건
=>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는가?
=> 살아가면어 어떠한 판단이나 결정을 내릴 때에도 주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고 그에 합당한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가?
=> 매일 살아가면서 주님 말씀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앙돌이 트랙백 0 : 댓글 0

1 November 2009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설교 제목 : 무덤조차 두려워하는 사람들
설교 본문 : 마태복음 27:62 ~ 66


0. 여는 이야기

* 할로윈 (Halloween)
-> 공포 컨셉으로 가득한 미국의 대중 명절
->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묘지, 흉가 등의 기괴한 모습으로 꾸미고 영화관에서 공포영화를 본다

* 예수님을 고발하여 죽게 만든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두려워하였다.
-> 이들은 놀랍게도 본문(62~66절)에 나온 요청(예수님의 무덤을 돌로 단단히 봉하고 경비병을 세워서 잘 지키라고 빌라도에게 부탁)을 안식일에 하였다.
(안식일에는 어떤 종류의 노동도 해서는 안된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로마 총독을 공적인 업무로 찾아가 접견함)
-> 그들은 일명 종교적 형식주의자(안식일 규례를 생명처럼 지키는 자들)인데, 도대체 어떤 이유로 자신들이 생명처럼 집착하는 안식일 규례를 어기면서까지 예수님의 무덤을 막는데 혈안이 되었었나?
-> 그들이 주장한 이유 (표면적인 이유) : 민심의 요동을 막기 위해
-> 본문 63~64절 : "총독 각하, 저 거짓말쟁이가 살아 있을 때 '내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라고 말한 것이 기억납니다. 그러니 3일째 되는 날까지는 무덤을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훔쳐 놓고는 백성들에게 '그가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났다' 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번의 마지막 속임수는 처음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거짓 이유에 불과했다! (진짜 이유는 곧 소개될 것임..)


1.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한 주장들 / 이 주장들이 틀린 이유

* 예수님 부활 후 제사장들의 부활 은폐 시도 (마태복음 28:11~15)
그 여인들이 길을 가는 동안 몇몇 경비병들은 성안으로 들어가서 대제사장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모두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은 장로들과 만나 계략을 꾸미고는 군인들에게 많은 돈을 쥐어 주며 말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고 말하라." 만약 이 소문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잘 말해서 너희에게 문제가 없도록 해 주겠다." 그러자 군인들은 돈을 받고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된 것입니다.

* 이후 오늘날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한 주장들이 많이 있었다.

1) 기절설
-> A.D. 70년 경에 쓰여진 코란에서 주장됨
->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의식을 잃고 기절한 것이라고 주장
-> 1982년에 출간된 책 "Holy Blood, Holy Grail" 에서는 총독이었던 빌라도가 제자들의 뇌물을 받고 예수님이 죽기 전에 십자가에서 끌어내렸다고 주장함
-> 19세기 신학자 칼 벤투리니 역시 같은 주장을 함

* "기절설" 의 모순
=> 현실적인 조건으로는 불가능한 시나리오
예수님이 그 모든 고난(모진 채찍, 가시 면류관,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심)을 겪으시고 난 후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허리에 창을 찔리신 후 물과 피를 쏟으신 후 사형 집행인들로부터 사망 선고를 받으시고 수의에 온몸이 꽁꽁 싸매어지신 후에 장례용 향유에 온 몸이 흠뻑 적시워지신 후... 3일간 음식과 물을 못 드신 상태에서 1톤에 달하는 무덤을 봉했던 돌을 혼자 움직이시고 나와서 경비병들을 때려눕힌 후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다?....... 이는 억지 주장이다.
=> 의학적으로 판명된 예수님의 죽음
의학자 윌리엄 D 에드워드는 한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로마 군병이 예수님의 허리를 창으로 찔렀을 때 쏟아져 나온 물과 피는 응고된 피와 혈청이 분리되서 나온 것으로, 오직 죽은 사람한테서만 가능한 현상이다" 라고 말했다.
=> 대제사장들의 말에서 드러나는 증거
본문 63절에서 "저 거짓말쟁이가 살아 있을 때..." 라고 말한 부분 : 이 말은 예수님이 확실히 사망했음을 이들이 확인했음을 의미한다.
이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이라 확인을 철저히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2) 도적설
->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치고 나서는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는 주장

* 도적설의 모순
-> 만약 그들이 시체를 훔쳤다면, 그들 자신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텐데 과연 그들이 그런 주장을 했을까?
-> 물론 그럴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없던 일을 지어내기도 하기 때문)
=> 하지만, 이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숨 걸고 증거하다가 차례차례 순교했다.
-> 이들은 예수 부활을 부인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는 협박을 받았지만, 그들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부활을 증거했다.
=> 사람은 자신이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지만, 거짓임을 뻔히 알고 있는 일에 대해서 목숨을 바치는 경우는 없다.
=> 예수님이 체포되실 당시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쳤던 제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순교자로 바뀔 수 있었던 원동력은?


2.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두려워한 진짜 이유

*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막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 했었다.
-> 그러나 오히려 예수님 부활의 확실한 증거를 만들어 준 꼴이 되었다.

* 그들은 왜 그토록 예수님의 부활을 막고자 했는가?
=> 예수님의 부활로 자신들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
=> 그동안 예수님이 옳았었고 자신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이 잘못된 일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되기 때문에

* 한 개의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서는 일곱 개의 더 큰 거짓말이 필요하다.
-> 만약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바로 인정했더라면 더 큰 거짓말을 안해도 되었을 것이다.


3.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이유

*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면 자신의 이성적, 합리적 사고가 무장해제 된다고 생각해서 자신 나름대로 예수님의 부활을 다양하게 부인한다.
-> 그리고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 사람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시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 예수님이 날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내 죄를 대속하셔서 나를 천국 갈 수 있게 해주신 것이니 이에 대해 사람들은 참 감사해한다.
=> 하지만 예수님이 그냥 자신의 죄를 짊어지고 무덤 속에 계속 죽은 채로 계셨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 예수님이 살아서 나오시는 순간, 그것은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내 자신의 인생의 주도권을 놓고 싶지 않고자 하는 자아의 몸부림인 것이다.

*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에 한 발만 담그고 있다.
=> 두 발을 다 담그면 지금까지 누리는 행복과 쾌락을 다 내려 놓아야 한다는 두려움에 두 발 담그기를 주저한다!


4. 맺는 이야기

* 밤길을 가다가 절벽에 떨어진 사람 이야기
-> 밤길을 가다가 발을 헛디뎌서 절벽에 굴러 떨어지다가 나뭇가지를 겨우 잡아서 매달리게 됨.
-> 그 때 주님이 그 사람 마음 속에 말씀하시기를 "나뭇가지를 잡고 있는 두 손을 지금 모두 놓아라."
-> 그 사람은 두 손을 다 놓으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을 무서워하여 절대 손을 놓지 못하고 밤을 지샘
-> 나중에 동이 트고 보니 그 사람은 이미 지면에 굉장히 가까운 위치에 있어서 그냥 손을 놓았으면 땅에 사뿐히 내려와서 갈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이었음

* 혹시 나는 무덤을 열고 나와 부활하신 주님과 맞닥뜨리기를 두려워하고 있나?
=> 주님 말씀을 온전히 따르기 위해 지금 내가 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앙돌이 트랙백 0 : 댓글 0

25 October 2009

"내려놓음"의 저자 이용규 선교사님의 피츠버그 한인중앙교회 부흥회 중 주일 설교내용 요약

설교 제목 :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0. 여는 이야기

* 시편 37:5
당신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십시오. 또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 처음에 몽골에서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셨을 때... 그 당시에는 나중에 각국을 돌며 말씀을 전하고 책도 내게 되실 줄은 당연히 전혀 꿈도 못 꾸고 있었다.
->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 있었다.


1. 처음으로 중국 KOSTA (해외 유학생 기독교 집회)에서 설교하시게 된 경위

* 몽골에서 중국으로
-> 원래 선교사님은 몽골 국제대학교에서 몽골과 그 주변의 소수 민족 학생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고 계셨다.
-> 그러던 어느날, 선교사님이 몇 주동안 중국으로 파견되게 되셨다.
-> 그 무렵 중국은 노동절 휴일 기간(우리나라의 추석, 미국의 추수감사절에 비교되는 가장 큰 명절)이었다.

* 선교사님과 하나님의 (기도를 통한) 대화
-> 그러던 어느날 새벽, 선교사님은 주님이 부르시는 듯한 느낌을 받고 새벽에 잠에서 깨셨다.
-> 선교사님은 그 주에 북경에서 열리는 KOSTA 를 위한 중보기도를 하라는 음성을 마음 속에서 들으셨고, 또한 심지어는 선교사님더러 KOSTA 에 직접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음성까지 들으셨다.
-> KOSTA 의 규모와 위상 등을 생각하시고 압도되신 선교사님은 주님께 기도로 자신이 왜 그곳에 가기 꺼려지는 지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으시며 주님과의 대화를 시작하셨다.
-> 1) 저는 몽골 선교사이지 중국 선교사가 아닙니다.
-> 2) 노동절 휴일 기간에는 기차표를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 3) 저는 파송된 지 7개월 밖에 안된 무명의 선교사입니다. (KOSTA 설교자 섭외는 늦어도 3개월 전에는 다 끝나고 설교자분들은 대부분 굉장히 유명한 목사님이나 선교사님들이시다)
=> 한 마디로 요약 : "하나님! 저 바보되고 싶지 않습니다! 안됩니다!"
=> 그 때 선교사님의 기분 : 모세가 바로한테 주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명을 받았을 때 핑계와 변명을 늘어놓았던 것과 같은 느낌
=> 그런 직후 선교사님은 주님께 이렇게 다시 기도하셨다 : 그 곳에 가는 것까지는 제가 자발적으로 하겠지만, 가서 말씀 전하는 것은 제가 직접 나서서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

* 하나님의 역사하심
-> 기차표를 구하러 갔는데 정말 우연치고는 너무도 황당하게 표가 남아있어서 북경까지 가게 됨
-> 그리고 또 한 번의 우연으로 예전에 알고 지내던 선교사님을 북경에서 만나시게 됨
-> KOSTA 관계자였던 이 분은 선교사님에게 북경에 온 이유를 물으셨고, 선교사님은 잠시 주저하다가 기도 내용을 알려드림
-> 그래서 이 분의 소개로 KOSTA 의 여러 관계자들을 만나게 됨 ("팔복" 을 만든 김우영 감독 등등)
->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KOSTA 설교자들 중 한 분이 자신에게 할당된 1시간 중 30분을 선교사님에게 떼어주심
-> 그래서 1500 여명의 유학생 앞에서 설교를 하시게 됨
-> 설교 시작 말씀 : "내몽골에서 북경까지 오게 된 것은 여기 모이신 분들 중 누군가는 제 설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설교 끝나고 많은 학생들이 선교사님께 와서 "저 때문에 오신 것임을 확신합니다!" 라고 은혜 받았음을 고백
-> KOSTA 집회때 만나게 된 관계자분들의 권유로 책을 쓸 것을 생각하게 됨

* 중국 KOSTA 설교 후 많은 사람들이 했던 질문 : "선교사님은 어떻게 내 마음의 소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소리인지 사탄이 주는 소리인지 알 수 있으십니까?"


2.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 라디오 전파 :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늘 공중에 떠다닌다
-> 라디오를 구해서 주파수를 제대로 맞추면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

*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무서워한 나머지 주님과의 직접 소통을 거부했다.
-> 그래서 여호와->모세->아론->백성들 과 같은 식으로 주님의 말씀이 전달되었다.

*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의 핵심은 "교제" 이다!
-> "교제"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다.

* 하나님과 소통이 잘 안 될 때의 문제점
-> 기도를 오래 할 수 없다 (마치 벽 보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 이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 형성이 제대로 안 되어 있어서 생기는 것이다.
-> 한 자매의 예 : 부흥회 후 은사를 받아서 주님의 음성을 마음속에서 계속 들을 수 있게 됨. 주님은 그 자매의 생활을 상세한 부분까지 자상한 아빠처럼 말씀을 하심. 그 자매의 반응.. "하나님, 그동안 저한테 말씀 못해서 답답해서 어떡하셨어요?"

* 하나님과의 소통이 잘 안 되는 이유
-> 하나님을 우리 자신의 틀 안에 가둬놓으려 하기 때문
=>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 말씀하시고 이 말씀들은 성경을 통해 confirm 된다.


3. 하나님의 음성

* 위조 지폐의 예
-> 100$ 위조 지폐는 많다.
-> 1$ 위조 지폐는 없다.
-> 3$ 위조 지폐는 없다.
=> 진짜가 있어야 가짜가 있고, 중요한 것일수록 가짜가 많다.
=> 하나님의 음성과 혼동될 수 있는 사탄의 음성들이 들릴 수 있다.

* 주님의 종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의 주의 사항들
-> 1) 우리 안의 정결함과 순종하는 마음이 필요
-> 중요한 것은 "관계" 이다.
-> 우리가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만 제대로 있으면 시행착오 끝에 결국에는 올바른 길로 인도된다.
-> 2)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식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 예전 조선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한시(4언절구 등)의 형식으로 들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 듣는 사람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말씀이 들린다.
-> 3) 사탄이 주는 소리는 급하고 찌르는 형식과 내용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소리는 섬세하고 부드럽다 (평안한 가운데 조용한 확신)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평화가 밀려온다.
-> 그러나 하나님과의 교제가 부담스러워서 그 말씀에 귀를 닫으면 관계가 성장하지 않는다.
-> 4) 하나님 말씀을 듣고 싶은 마음이 단순한 호기심에서라면 들리지 않을 것이다.
-> ex. "일단 한 번 말씀해 보세요. 그 말씀이 내 뜻과 맞으면 거기에 따를게요." -> 이러면 절대 안들린다.
-> 우리는 자꾸 자신의 뜻만 앞세우기 마련이다...
-> 5) 내 안에 내 자신의 소리가 너무 크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 것이다.
-> 6)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싶으면 우선 주님께 고백해야 한다. "주님, 말씀해주세요. 100%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 사탄의 유혹 "미쳤어?" "네가 실력이 있냐, 능력이 있냐?" "사람들한테 광신도 취급 받으면 어떡할래?" 등등..
=> 이런 유혹에 넘어가 마음의 문을 닫으면 하나님 말씀이 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4. 응답되지 않는 기도에 대한 고민

*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해주시지 않음에 불만을 가지고 좌절한다.
-> 그러나 응답되지 않은 기도에도 그 의미가 있고 기도 응답이 늘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만은 아니다.

* 모세의 기도
-> 모세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대개 기도에 응답해주셨다.
-> 그러나 모세의 평생 소원인 "가나안 땅 입성" 에 대한 기도는 들어주지 않으셨다.
-> 배경 원인 : 민수기 20:1~13
->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자 모세와 아론에게 대들었을 때, 모세는 여호와의 명을 받고 바위를 두 번 쳐서 백성들과 가축을 위한 물을 내어줬으나, 여호와의 명령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바위에서 물이 나오는 기적에 대한 영광을 여호와께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이에 분노하셔서 모세와 아론이 가나안 땅에 입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그 후 모세가 가나안 입성을 열망하며 여호와께 기도를 드렸을 때 여호와의 대답 : 신명기 3:26 ("그것으로 충분하니 이 문제에 대해 내게 더는 말하지 마라." 즉, "모세야, 너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다.")
->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에 입성함.
=> 모세는 예비하는 자, 여호수아는 천국(약속의 땅)의 완성자로서의 사명을 각각 가진 것임
=> 이는 세례 요한(예비하는 자), 예수님(천국의 완성자)의 사명과도 같다.
=> 모세와 세례 요한은 멈출 줄 알았고, 그들이 가졌던 질문에 대한 해답은 예수님을 통해 제시되었다.
=> 응답되지 않은 기도들 안에는 주님이 당신에게 주신 사명이 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들어주시지 않는 것이고, 당신의 사명에 대한 기도는 들어주실 것이다)

* 히스기야 왕의 기도
->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듣고 죽도록 기도했는데 여호와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생명이 연장됨
-> 생명을 연장해서 얻게 된 아기 : 므낫세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독한 왕)
=> 기도 응답이 늘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만은 아니다!


5. 맺는 이야기

* 샘물교회 사건
-> 이 사건에 대해 선교사님이 들으신 주님의 음성, "죽음의 문제는 극복했는가?"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앙돌이 트랙백 0 : 댓글 0
18 October 2009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설교 제목 : 찢어진 휘장, 열린 새 길
설교 본문 : 마태복음 27:45 ~ 61


0. 여는 이야기

* 오바마 미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 본인 자신도 많이 놀랐다고 함 (취임한 지 얼마 안되었는데 이런 큰 상을 받게 되어서)
-> 비폭력, 평화 선언 등 그가 취임 후 편 노력에 대한 세계 각국 사람들의 지지와 앞으로 세계 평화를 이끌도록 격려하는 의미로 해석됨
-> 최근 미국의 모습은, 20세기 초중반에는 세계 평화를 위해 자국의 희생을 무릅쓰는 모습을 많이 보였던 것과는 달리 자국의 이익을 위해 남을 희생하는 소국의 모습을 많이 보인다.
-> 국가를 대국, 소국으로 구분하는 것처럼 개인은 대인, 소인으로 구분이 된다.

* 대인, 소인의 정의
-> 공감이 가는 멋진 정의 : "소인은 (다른) 사람에 대해, 평범한 사람은 사건에 대해, 대인은 사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 목사님이 내리신 정의 : 소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지만, 대인은 다른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1. 십자가 정신

* 십자가 정신 : 자신이 찢김으로 남을 위한 길을 여는 정신
-> 예수님은 오전 9시 경부터 오후 3시 경까지 십자가에 매달려 계셨다.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늘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셨던 예수님에게는 육체적 고통보다는 정신적 고통(하나님과 분리됨)이 견디기 힘든 극심한 고통이었다.

* "찢어진 휘장"의 의미
->예수님 돌아가시자마자 성전 휘장이 찢어짐
-> 휘장 :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장막
-> 휘장 안쪽의 지성소는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한 번 속죄하러 들어갈 수 있었고, 일반 백성들은 감히 들어갈 수 없었다.
-> 히브리서 10:19~20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피로 인해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한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그 길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휘장을 통해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입니다. 그런데 이 휘장은 바로 그분의 육체입니다.
-> 인간의 죄악때문에 막혔던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높은 장벽(휘장)이 찢어져서 이제 인간들은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 세상을 변화시킨 리더들의 십자가 정신 : 모세
-> 금송아지 사건으로 여호와께서 몹시 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고 모세를 통해 새로운 민족을 세우려 하셨다.
-> 그 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은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지워져도 좋습니다" 라고 간절히 중보기도를 함
-> 일반인 : 자신만 안전하면 다른 사람들의 안위는 상관 안함
-> 모세 : 자신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잘못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 함

* 세상을 변화시킨 리더들의 십자가 정신 : 바울
-> 로마서 9:1~3
나 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내게 이것을 증거합니다. 곧 내게 큰 근심이 있다는 것과 내 마음에 끊임없는 고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 형제, 곧 육신을 따라 된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 할지라도 좋겠습니다.

* 안디옥 교회 이야기 (사도행전 11~13장)
-> 예루살렘 교회 :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목회하였고 2만여명의 신도들이 있었으나, 밀려드는 신도들을 관리하느라 교회의 역량을 소진했다.
-> 안디옥 교회 : 비록 규모는 작았으나 십자가 정신이 뚜렷이 있었다.
-> 글라우디오 황제 때 로마 전역에 심한 기근이 들었는데, 안디옥 교회는 성도들의 정성을 모아 예루살렘 교회에 성금을 보냈다 (사도행전 11:29)
-> 안디옥 교회라고 흉년이 안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희생을 통해 남을 도울 줄 아는 크리스천들이었다.
-> 안디옥 교회는 기독교 사상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했는데, 최초의 선교사인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서 성공적으로 목회 중이던 공동 담임목사였다.
-> 그들은 복음 전파를 위해 자신들의 주춧돌(두 담임목사)을 빼서 내어줄 만한 십자가 정신이 있었다.

* 세상을 바꾸는 교회
-> 어떤 교회가 세상을 바꾸고 시대를 변회시킬 수 있는가?
-> 대형교회? 대통령, 장관, 판검사들이 다니는 교회? 아니다.
-> 십자가 정신이 있는 교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 창립 29주년을 맞은 우리 교회는 우리 교회 자체의 성장에만 힘써서는 안된다.
-> 왜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우리 교회를 이 곳에 세우셨는지를 늘 고민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 해야 한다.

* 예수님의 희생으로 회복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 예수님은 평생 하나님과 하나되어 사셨다.
-> 아침 일찍 묵상과 새벽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심
-> 주님 안에는 하나님의 뜻이 항상 가득 하셨기 때문에 주님이 입을 여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셨다.
-> 하나님과의 풍성한 교제로 얻는 삶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사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를 회복해주셨다.
-> 로마서 5:10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됐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심으로 인해 그분과 화목하게 됐으니 화목하게 된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인해 확실히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 오늘 본문 중 50절 : "예수께서 다시 크게 외치신 후 숨을 거두셨습니다."
-> 예수님이 하신 다음의 말씀들 중 어떤 말씀이 위의 외침에 해당될까? 1) "다 이루었다!" 2) "아버지여, 내 영혼을 당신께 맡기옵니다."
-> 1번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세상에 크게 선포하심). 2번은 잠잠히 하나님께 고백하셨을 것으로 여겨짐
=> 과연 우리는 주님이 생명을 바치시면서 회복하신 우리와 하나님의 교제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2. 아리마대 요셉 : 드러난 참제자

* 위험을 무릅쓴 용기
->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던 아리마대 요셉은 온갖 용기를 짜내어 (영어 성경 NASB 버전을 보면 "he gathered up courage" 라고 나온다)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자신에게 달라고 요구했다.
-> 당시 로마법은 반역 죄인의 시신을 거두거나 울며 애곡함을 금지했다.
->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한 그의 행동으로 인해 그는 공회원 자격 박탈, 재산 몰수 등을 당할 수도 있었다.
-> 그가 이러한 용기를 내기까지 얼마나 힘든 노력을 했을까?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을까?

* 진정한 제자 / 거짓 제자
-> 평화로울 때는 드러나지 않지만 어려울 때는 확실히 드러난다.
-> 마태복음에 나오는 "두 아들 비유" (마태복음 21:28~32)
"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그 사람이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말했다. 맏아들은 '싫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그 뒤에 그는 뉘우치고 일하러 갔다. 그 후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똑같이 말했다. 둘째 아들은 '예, 아버지' 라고 대답만 하고는 가지 않았다. 두 아들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했느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맏아들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나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요한이 너희에게 의의 길을 보여 주려고 왔는데,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들과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그를 믿지 않았다."
-> (고대 사본들에는 맏아들은 가겠다고 하고 가지 않았고 둘째 아들이 가지 않겠다고 하다 뉘우치고 일하러 간 것으로 나옴)
-> 아리마대 요셉은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평소 드러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겁한 자였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그는 어려울 때 진정한 용기를 보였다.
->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주님의 제자임을 고백해야 할 때에 물러서는 경우가 많다.
-> 우리는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 : 아리마대 요셉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용기를 짜낼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를...
-> 진정한 제자는 호언장담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 진정한 제자는 이 세상의 물질, 권세에 현혹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본다 (천국 소망)
=> 비록 이 세상에 발붙이고 살지만, 시선은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살자!


3. 맺는 이야기

* 죠지 버나드 쇼, "횃불처럼 살고 싶다"
->
횃불처럼 살고싶다.
인생의 진정한 기쁨은
스스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목적을 위해
자신이 쓰이는 것이다.
세상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배 아파하고,
열병을 앓는 이기적인 고깃덩어리는
진정한 기쁨을 얻을 수 없다.
나는 나의 인생이 전체 사회에 속해 있으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죽을 때 내 자신이
완전하게 소진된 상태이기를 원한다.
내가 더 열심히 봉사할수록
나는 더 오래 살아 남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인생을 즐긴다.
나에게 인생은 곧 꺼져 버릴 촛불이 아니라
일종의 찬란한 횃불이다.
이 횃불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기 앞서
내가 들고 있는 동안은 되도록
환히 타오르게 만들고 싶다.

* 횃불과도 같은 예수님의 인생
-> 마가복음 10:45
인자 역시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치를 몸값으로 자기 생명을 내어 주려고 온 것이다.

*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
-> 우선 내 자신이 찢길 각오를 해야 한다.
=>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우리에게  both A and B (이것도 저것도 함께) 가 아니라 either A or B (이것이냐 저것이냐) 를 요구합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앙돌이 트랙백 0 : 댓글 0

11 October 2009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설교 제목 : 희롱당하시는 왕
설교 본문 : 마태복음 27:27 ~ 44


0. 여는 이야기

*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 주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사실적으로 묘사
-> 고난을 당하는 내내 무기력하게 고통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 자신을 향한 온갖 폭력과 모욕에 아무런 대응을 안하셨다.
->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마음 : 저 야비한 무리들을 온갖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예수님이 그냥 확 혼내주셨으면 얼마나 속시원할까?
-> 하지만 주님은 이러한 상황을 자처하셨다.

* "희롱당하시는 왕"
-> 굉장히 모순된 말/상황 (왕은 희롱당하는 존재가 아니다)
-> 우리 주님이 이러한 모순된 상황의 주인공이 되기를 자처하셨다면, 그 안에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1. 빌라도의 관정에서 골고다까지

* 십자가 처형
-> 원래 동방 국가들의 처형 방식으로, 로마가 이를 수용
-> 군중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는 공개 처형
-> 건강한 사람은 10일동안 십자가에 매달려서 살아있는 경우도 있었다
-> 보통은 (처형당하는 사람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 처형시간을 줄이기 위해 몽둥이질, 채찍질을 먼저 하고 십자가에 매달았다.

*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과 모욕
->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에게 모진 채찍질을 가하고 자주색 옷(왕의 옷)과 가시 면류관을 입힌 후 갈대(왕의 홀)를 손에 쥐어줌
-> 그리고 나서 "유대인의 왕 만세!" 라고 외침
-> 그런 직후 예수님께 침을 뱉고 갈대를 뺏어서 머리를 침 : 왕권을 빼앗고 "우리가 왕이다!" 라고 선언하는 것

* 빌라도가 예수님께 한 선의의 행동들
-> 채찍질
물론 채찍질 자체도 매우 고통스럽지만, 십자가 처형 시간을 줄이기 위한 배려였다
-> 쓸개 탄 포도주 제공
쓸개 탄 포도주는 당시 마취제로 쓰였으며, 예수님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제공되었으나,
예수님은 이를 마시기를 거부하셨다 (고통을 온전히 당하시기 위함)
-> "유대인의 왕" 팻말
예수님을 조롱하기 보다는 예수님을 고발한 유대 제사장들에 대한 반발과 조롱의 의미로 해석됨

=> 그러나 이러한 빌라도의 배려가 예수님을 기쁘게 하거나 예수님의 사명 수행에 도움이 되었나? 그렇지 않다.

* 우리 교회 근처의 한 미국 교회 이야기
-> 성도수는 1000 여명인데, 주일 출석 교인 수는 약 200 여명
-> 주일에 출석하지 않는 교인 800 여명은 주일에 출석하지는 않아도 주일마다 헌금을 송금한다
-> 그들 중 일부는 죽을 때 재산을 교회에 기부하기도 한다
->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런 형식적 배려가 아니다
-> 예수님은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것" 을 원하신다

* 조지 부시
-> 미국 복음주의 교회들의 지지를 받고 대통령에 당선됨
-> 이러한 지지에 대한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조지 부시는 복음주의 교회와 관련 단체들에 대한 물질적 지원을 확대함
-> 하지만 그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들 중 한 명으로 꼽힐 정도로 평가를 받음
-> 그가 교회의 지지에 대해 보답했어야 하는 방식은 진정한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섬기는 리더로서의 의무를 다 하는 것이었지, 교회들에 대한 물질적 지원을 확대하는 것으로 자신의 보답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 예수님의 좌편과 우편 자리
->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기 전에는, 제자들은 누가 예수님의 좌편, 우편에 자리할 것인지를 놓고 다툼을 벌였다.
-> 하지만 예수님이 체포되어 고난을 당하시자 그들은 모두 도망치고, 결국 예수님의 좌편과 우편의 자리에는 같이 십자가 처형을 당한 강도들이 매달렸다.

=> 예수님의 제자들은 영광의 자리의 좌우편은 원했지만, 고난의 자리의 좌우편은 외면했다.
=> 그들은 고난이 없이는 영광도 없음을, 십자가 없이는 부활도 없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2. 희롱하는 무리들 /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예수님

* 예수님을 향한 무리들의 조롱
-> 본문 40절
말했습니다. "성전을 헐고 3일 만에 짓겠다던 사람아! 네 자신이나 구원해 봐라! 어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한 번 내려와 봐라!"
-> 42~43절
말했습니다. "남을 구원한다더니 정작 자기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는군!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니 어디 한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지.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어 주겠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니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신다면 지금이라도 그를 당장 구원하시겠지. 자기 스스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고 말했었다."
-> 누가복음 23:39
십자가에 달린 죄수 중 하나가 예수를 모독하며 말했습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그러면 너와 우리를 구원해 보아라!"

=> 조롱한 무리들의 핵심 메시지 :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 이 메시지는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시는 장면과 본질적으로 같다.

* 광야에서 예수님이 사탄에게 당한 첫 번째 시험
-> 40일을 금식하여 배고프신 예수님을 향한 사탄의 유혹 (마태복음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다가와 말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 이 말은 결국 "네가 가진 지위와 능력을 네 편리를 위해 사용해라!" 라는 말임.
->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 (마태복음 4:4)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됐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 이 말씀은 "내가 아무래 배고파도 하나님이 정하신 순리를 바꾸지는 않겠다!" 라고 말씀하신 것임. (내 욕구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욱 중요하다)

* 광야에서 예수님이 사탄에게 당한 두 번째 시험
->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명하라는 사탄의 시험 (마태복음 4:6)
마귀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내려 보시오. 성경에 기록됐소. '하나님이 너를 위해 천사들에게 명령하실 것이다. 그러면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붙잡아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할 것이다.'"
=> 사탄의 시험이 더욱 교활해짐 (이번에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
=> 이 말은 결국 "세상 모든 사람들 앞에서 커다란 기적을 행하면 그걸 본 사람들이 너를 구주로 인정하고, 너의 구원 사역이 더 쉬워질 것이 아니냐?" 라는 말임.
=>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 (마태복음 4:7)
예수께서 마귀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성경에 또 기록됐다. '주 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 이 말씀은 "아무리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된다" 라고 말씀하신 것임.

*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이 다 "성경적"인 것은 아니다!
-> "성경적"인 말씀 :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말씀
-> 마가복음 16:17~18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를 것이다. 그들은 내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새 방언으로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를 받지 않으며 아픈 사람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 이 모든 것이 주님만 믿으면 다 가능한 일인가? -> 가능할 수도,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 바울은 복음을 전하러 다니는 여행 도중 독사에 물렸어도 살았다.
-> 그렇다고 우리도 독사를 구해 와서 그 독사한테 팔을 내밀어서 일부러 물리면 우리도 아무 탈 없이 무사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러면 우리는 바로 죽을 확률이 매우 높다.
-> 그렇다면 바울은 왜 독사한테 물리고도 안 죽었나? -> 주님의 뜻이 그러하셨기 때문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적을 보여주셔서 그들을 믿게 하시려고 주님이 인도하심)
=> 바울은 절대로 "예수님이 우리는 독사한테 물려도 안죽는다고 얘기하셨으니 어디 한 번 독사한테 일부러 물려봐야지!" 하고 예수님을 시험한 게 아니다!
=> 지금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바로 "성경적"인 것이다!

* 사탄의 재도전
-> 사탄은 몇년 전 실패한 자신의 시험을 예수님의 사역이 절정에 달한 십자가 처형장에서 다시 시도함
=>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면 사탄이 우리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기 때문!

* 조롱하는 사람들
-> 그들은 진정한 구원자는 위험에 빠진 자신을 구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자임을 전혀 알지 못했다.
-> 진정한 구원자의 역할 (이사야 53:8)
그는 강제로 끌려가 재판을 받고 처형을 받았지만 땅에서 그의 생명이 끊어지는 것을 보고서 그가 당하는 것은 내 백성의 죄악 때문이라고 중얼거리기라도 한 사람이 우리 세대 가운데 누가 있느냐?

* 2천년 전 골고다 언덕... 인간들의 처절한 무지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홀로 빛나고 있었다!


3. 맺는 말

* 독일의 본 회퍼 목사 이야기
-> 나치가 위세를 떨칠 시절 독일에서 목회를 하심
-> 나치의 교회 핍박이 절정에 달한 즈음에 미국에 강연차 여행을 오심
-> 미국의 많은 성도들이 본 회퍼 목사님의 미국 망명을 권유했으나, 그는 자신의 사명이 독일에 있음을 믿고 독일로 돌아감
-> 나중에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하였으나 발각되어 1945년 4월 8일에 집단 교수형을 당함
=> 그가 죽기 전 옥중에서 남긴 말 :
명령에 따라 고난을 당하는 것은 자발적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보다 쉽다.
여럿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홀로 고난을 당하는 것보다 쉽다.
육체적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보다 쉽다.
나는 명령에 따라, 여럿이, 육체적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이지만,
예수님은 자발적으로, 홀로, 정신적으로 고난을 받으셨다.
=> 우리들 중 아무나 만약 예수님이 가지신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십자가의 고통을 당했다면,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십자가에서 내려왔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보다 우리를 더욱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셨다.
=> 과연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우리 자신의 무엇을 버리고 내려놓는가?

* 사도 바울의 "내려놓음" 의 정신
-> 고린도 전서 9:19~22
내가 모든 사람에 대해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됐습니다. 이는 내가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유대 사람들에게 내가 유대 사람처럼 된 것은 유대 사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나 자신이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만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율법 아래 있는 사람처럼 된 것은 그들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연약한 사람들에게 내가 연약한 사람처럼 된 것은 연약한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어떻게든지 몇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 사도 바울은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려놓고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줬다
=>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고 한 사람에게라도 더 다가가기 위해 우리가 버려야할 것은 무엇인가?
=>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구원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기 위해 버려야할 것들, 포기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 온갖 극심한 고통을 당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
=> 예수님은 그 모든 고통을 당하지 않으셔야 할 분인데 우리를 위해서 그 모든 고통을 자발적으로 당하셨다.
=>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끝까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않으셨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앙돌이 트랙백 0 : 댓글 0

4 October 2009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설교 제목 : 빌라도 법정의 아이러니
설교 본문 : 마태복음 27:11 ~ 26


1. 대제사장들의 아이러니

* 선동, 충동, 고발 등의 모든 행동의 주체는 대제사장들이다.
-> 마가복음 15:1
새벽이 되자 곧 대제사장들은 장로들과 율법학자들과 온 공회원들과 함께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를 묶어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 마가복음 15:3
대제사장들은 여러 가지로 예수를 고소했습니다.
-> 마가복음 15:11
그러자 대제사장들은 군중들을 선동해 오히려 바라바를 대신 풀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 대제사장의 원래 직분
-> 제사를 드리는 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지성소로 들어가 속죄의식을 행하고 죄사함을 선포하는 것
-> 즉, 백성의 죄를 짊어져야 하는 사람들이다
->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죄를 뒤집어씌우고 죽이려 했다
->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감사해야 하는 유월절을 맞아 오히려 죄 없는 예수님을 모함해서 죽이려 함
-> 아이러니!

* 대제사장들의 아이러니의 원인 : 시기, 질투
->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시기, 질투하였다 (본문 18절)
빌라도는 그들이 예수를 시기해 자기에게 넘겨준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 시기/질투가 무서운 이유
-> 1) 어느 누구도 그로부터 자유로룰 수 없기 때문
-> 2) 그 사람에게서 자유를 빼앗아가기 때문
사 울의 예 : "사울이 죽인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 라는 노래가 퍼질 정도로 다윗의 인기가 자신의 인기를 추월하기 시작하자, 사울은 그때부터 다윗을 질투어린 시선으로 주목하기 시작함 (영어성경 NASB : Saul looked at David with suspicion from that day on.)
온종일 다윗에 대한 열등감에 휩싸여 있고 그를 어떻게 폄훼할까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하니 사울 개인의 생각의 자유는 없어진 셈이다.
-> 3) 또다른 죄를 짓는 기초가 되기 때문
당뇨병이 무서운 이유는 그 병 자체보다는 그에 따르는 합병증 때문인 것과 같다.
->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 : 가인의 질투 때문
->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게 됨 :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 때문

* 시기/질투를 끊는 딱 한 가지 방법
-> 시기와 질투의 대상을 축복하라!

* 영국의 유명한 목사님들 이야기 (마이어, 스펄전)
-> 스펄전 목사님 : 시골에서 올라와서 Tabernacle Church 에서 목회 시작. 성령 충만한 목회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켜서 사람들이 이 교회로 모이기 시작
-> 마이어 목사님 : 자신의 교회보다 스펄전 목사님의 교회가 더욱 부흥하게 되자 스펄전 목사님을 질투하기 시작.
설교를 준비할 때에도 스펄전 목사님에 대한 경쟁심으로 설교 준비가 잘 안되게 됨
-> 어느날 하나님께 기도할 때 "스펄전 목사를 축복하라"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
-> 그래서 스펄전 목사를 축복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마음 속에서 시기, 질투가 사라지고 평화가 밀려왔다고 한다
-> 결국에는 두 목사님 모두 win win

* 마음 속에 시기, 질투의 대상을 떠올려보라 -> 그 사람이 잘 되기를 축복하라!


2. 백성들의 아이러니

* 살인자 바라바에게는 생명을,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에게는 사망을 외침
-> 본문 21~22절
총독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두 사람 가운데 누구를 놓아주기 바라느냐?" 무리들은 "바라바!"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는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하고 빌라도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모두 대답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면서 단 한 번도 남을 해하신 적이 없었다.
-> 오히려 낙심한 자에게는 희망을, 죽어가는 자에게는 새 생명을 주신 분이시다.

* 며칠 전에는 "호산나!", 이 날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 본문 23절
빌라도가 물었습니다. "도대체 그가 무슨 악한 일을 했다고 그러느냐?" 그러나 그들은 더 큰 소리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쳤습니다.
-> 히브리어, 헬라어 성경에서 백성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쳤던 걸 묘사한 단어는 불과 얼마 전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호산나!" 라고 외쳤던 걸 묘사한 단어와 같다.
-> 인간의 아이러니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일이 진행될 때에는 하나님 찬양, 자신의 뜻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 원망)

* 군중심리에 의한 집단 광기
-> 본문 20절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무리를 선동해 바라바는 풀어 주고 예수는 죽이라고 요구하게 했습니다.
-> 군중심리가 다른 사람들을 추켜세우고 칭찬하는 데 사용되는 일은 거의 없다. (인간의 죄악된 본성 때문)
-> 우리는 군중심리에 휩쓸려서 다른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된다. 오직 우리가 직접 보고 들은 것에 대해서만 판단하자.
-> 본문 25절
그러자 모든 백성들이 일제히 대답했습니다. "그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리시오!"
->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눈에 시뻘겋게 핏대를 세우고 날뛰는 광기를 느낄 수 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식에게는 해가 안갔으면 하고 바라기 마련인데, 이들은 갈 데까지 갔음을 알 수 있다.


3. 빌라도의 아이러니

* 민란을 두려워하여 바라바(민란 선동자)를 놓아줌
-> 본문 24절
빌라도가 자기로서는 어쩔 방도가 없다는 것과 또 폭동이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들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 아무 죄가 없다. 이 일은 너희가 책임을 져야 한다."
-> 예수님을 석방하면 민란이 일어날까봐 민란을 선동했던 죄로 잡혀있던 바라바를 놓아줌
-> 아이러니!

* 예수님 처형의 책임을 회피하려 했지만 사도신경에 자신의 이름이 오름
-> 사도신경 중,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 원래대로라면 "대제사장들과 로마 군병들에게 고난을 받으사.." 가 당연해 보인다.
-> 대제사장들 : 예수님 모함, 로마 군병들 : 예수님을 채찍질, 희롱, 모독
-> 빌라도 : 예수님을 석방하기 위해 나름 노력하고 예수님의 죄없음을 알고 있었다.
-> 그렇다면 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인가?
=> 본디오 빌라도가 최종 결정권자였기 때문

* 결정권자(리더, 하나님께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자) 라는 역할의 중요성
-> 본문 24절
빌라도가 자기로서는 어쩔 방도가 없다는 것과 또 폭동이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들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 아무 죄가 없다. 이 일은 너희가 책임을 져야 한다."
-> 그는 자신의 결정권을 활용하여 공정한 판결을 내릴 권한이 있었지만, 백성들의 동요를 막아서 자신의 정치생명에 해가 없게 하기 위해 공정한 판결을 외면하였다.

* 선악과를 먹은 죄 : 하와의 죄가 아닌 아담의 죄로 기록됨
-> 로마서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또 죄로 인해 죽음이 들어온 것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습니다.
-> 선악과를 먼저 먹은 사람은 하와이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아담의 범죄로 보셨다.
-> "선악과를 먹지 마라" 라는 명령은 하와가 만들어지기 전에 아담에게 직접 전달되었기 때문.

* 하나님은 내게 현재 내가 가진 만큼의 재물, 권력, 책임을 위임하셨다.
-> 나는 내게 주어진 권한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 혹시 빌라도처럼 직무 유기를 하고 있지는 않는가??


4. 예수님의 아이러니

* 죄가 없으셨음에도 자신을 전혀 변호하지 않으심
-> 본문 12~14절
예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고소를 받고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예수께 "이 사람들이 여러가지로 너를 반대하는 증언들이 들리지 않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단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총독은 매우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 이사야서에 기록된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함 (이사야 53:7)
그는 학대를 받고 괴롭힘을 당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을 깎이는 잠잠한 어미양처럼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5. 맺는 이야기

* 올바른 판단을 방해하는 요인들
-> 대제사장 : 시기, 질투
-> 백성 : 군중 심리
-> 빌라도 : 자신의 정치생명(안위)
-> 혹시 우리도 시기, 질투, 군중 심리, 자신의 안위의 영향을 받아 마땅히 내려야 할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가?

* 대제사장, 백성, 빌라도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체제와 질서(예루살렘 성전과 로마 제국)은 이미 모두 망했다.

*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지금까지 남아 있고 앞으로도 영원하다!
-> 우리는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앙돌이 트랙백 0 : 댓글 0


27 September 2009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설교 제목 : 같은 실패, 다른 결말
설교 본문 : 마태복음 26:69 ~ 27:10

0. 여는 이야기

* 100점짜리 단어는?
-> A부터 Z까지의 알파벳을 1부터 26의 숫자와 대응해서 A(1), B(2), C(3), ... , Y(25), Z(26) 와 같이 표를 만들어보자.
-> 한 단어를 구성하는 각각의 알파벳에 대응하는 숫자를 더하면 그 단어의 점수가 된다고 가정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 중 가치 있다고 여기는 단어들 중에서 과연 어떤 단어가 100점짜리 단어인지 찾아보자.
-> 100점짜리 단어를 찾기는 쉽지 않다.
HARD WORK (98점)
KNOWLEDGE (96점)
LOVE (58점)
LUCK (47점)
MONEY (72점)
POWER (67점)
LEADERSHIP (89점)
...
ATTITUDE (100점!)

* 책 "1%의 행운"
-> "삶이란 인생 앞에 어떤 일이 생기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일 앞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 겉보기에는 똑같아 보이는 실패라 해도, 실패에 대한 나의 자세에 따라 결말은 달라질 수 있다.
-> 베드로와 가룟 유다의 경우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1. 베드로 : 실패에서 통곡으로

* 주님을 부인하는 말의 강도가 점점 세짐
-> 단순한 부인 (본문 70절)
그러나 베드로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 말을 부인하며 "네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 맹세하며 부인 (본문 72절)
-> 베드로는 다시 맹세코 부인하며 "나는 그 사람을 모르오!"라고 했습니다.
-> 저주하고 맹세하며 부인 (본문 74절)
-> 그러자 베드로는 저주하며 "나는 그 사람을 모른다!"고 맹세했습니다. 바로 그때 닭이 울었습니다.
-> 부인하는 내용 : 예수님과 공동체를 모두 부인

*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 한 번 작은 악행을 시작하면 그 악행의 강도가 점점 커진다.
-> 실수로 인한 작은 실패 -> 뉘우치지 않고 자기 합리화를 하면 의지적, 고의적 범죄로 발전

* 진심 vs 본심
-> 믿음은 이론이나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실제 삶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 베드로가 예수님을 격렬하게 부인한 후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을 때, 베드로는 무엇을 보았을까?
-> 누가복음 22:60~61
그러나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나는 당신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바로 그때 베드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닭이 울었습니다.
주께서 돌아서서 베드로를 쳐다보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하신 주의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비난과 조롱, 분노의 시선을 던지셨을까?
-> 아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시선을 보고 예수님은 그래도 베드로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꼈기에 밖으로 나가 한없이 통곡한 것이다.

* 베드로의 한없는 통곡
-> 마태복음 26:75
그제야 베드로는 예수께서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밖으로 나가 한없이 눈물을 쏟았습니다.
-> 마가복음 14:72
바로 그때 닭이 두 번째 울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예수의 말씀이 생각나 엎드러져 울었습니다.
-> 누가복음 22:62
베드로는 밖으로 나가 한없이 울었습니다.
-> 베드로의 통곡을 이끈 것은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이었다.

* 슬픔에 통곡하는 베드로를 위해 예수님이 미리 남기신 말씀
-> 누가복음 22:31~32
시몬아, 시몬아, 보아라.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체질하겠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나는 네가 믿음을 잃지 않도록 너를 위해 기도했다. 네가 돌이키고 나면 네 형제들을 굳세게 하여라.
-> 즉, 예수님은 "베드로야, 나는 네가 약해서 실패할 것을 안다. 하지만 네 믿음이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을테니 나중에 회개하고 난 후에는 형제들을 굳게 하라" 고 당부하신 것이다.

* "베드로의 예수님 부인" 은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 당시 복음서의 독자들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었다.
-> 당시는 로마의 핍박으로 인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초대 교회 독자들은 당시 최고의 사도이자 반석과도 같은 존재로 추앙받는 베드로도 이렇게 실패하고 통곡했으니, 이렇게 약하고 보잘것 없고 항상 마음이 흔들리는 나(초대 교회 독자)에게도 주님이 다시 기회를 주시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 목사님이 강단에 서시는 것
-> 한없는 영광이지만, 인간의 죄악된 본성으로 인해 늘 갈등과 도전이 따른다.
-> 그래도 이 자리에 서서 설교하실 수 있으신 것은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라고 인자하게 말씀하시는 주님 덕분이다.

*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일어나거라, 우리 다시 시작하자꾸나!"
-> 주님의 이 음성을 듣고, 우리 역시 죄악된 나의 본성을 이기지 못한 내 자신에 대해 후회하고 통곡하자!


2. 가룟 유다 : 실패에서 죽음으로

* 유다의 죄가 베드로의 죄보다 더 큰가?
-> 인간의 기준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시면 도토리 키재기다.

* 유다는 양심의 가책을 받았지만, 이는 인간적 후회에 그치고 회개와 통곡으로 이어지지 못하였다.

* PGA 최고의 장타를 자랑하는 골퍼 John Daly 의 자서전 "My Life in and out of the Rough"
-> 1991년 PGA 메이저 대회 우승 이후 스타덤에 오름. 그 후 도박, 술, 마약, 여자 문제 등으로 문제를 많이 일으켰고, 십수년 동안 도박으로 몇천만 달러를 날림.
-> 그의 자서전에서 그는 과거의 이러한 허송세월을 후회하며 이렇게 말한다. "잭 대니얼스(위스키), 마약은 이미 끊었고, 이제 남은 건 도박 뿐인데, 앞으로는 25$ 짜리 베팅 한도를 가진 슬롯 머신에서만 도박을 할 것이다. 하지만 돈을 따게 되면 50$, 100$ 블랙잭 테이블로 옮겨가게 될 것 같다."
-> 그의 후회에는 통곡이 없다. 그가 진정 새사람이 될 것같지는 않다.
-> 통곡이 없으면 실패는 절망으로 끝나고 만다.


3. 맺는 이야기

* 유럽 교회들의 첨탑 꼭대기에 있는 풍향닭
-> 베드로를 향한 주님의 한없는 사랑을 상기시키기 위함

* 시간의 아침은 오늘을 밝히지만, 마음의 아침은 내일을 밝힌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앙돌이 트랙백 0 : 댓글 0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13 September 2009

설교 제목 : 예수의 것으로 살기
설교 본문 : 로마서 1:1~7


0. 여는 이야기

* 용혜원 시인의 시, "인생과 커피"

인생과 커피 : 용혜원
 
커피를
처음 마실 땐
이 쓴 것을
왜들 마시나 했다
 
맛을 알아가면서는
원두를 갈아
필터에 더운 물로 내려
커피 다운
커피를 마시고 싶어한다
 
향기가 좋기에
맛도 좋다
사랑도 알아갈 땐
가슴앓이를 했다
왜 이런 사랑을 하나
고민도 많이 했다
내 삶도 갈고 뽑아
열정과 열정으로
살아간다
 
한 잔의 커피
단 한 번뿐인 삶
똑같은 값에
원하면 한 잔을 더 주는
카페도 있지만
참담한 것은
인생에는 덤이 없다
 
인생이란
우리들이 대가를
치를 수 밖에 없는
소중한 삶이다


-> "단 한 번뿐인 삶", "인생에는 덤이 없다"
-> "인생이란 우리들이 대가를 치를 수 밖에 없는 소중한 삶이다"


1. 정체성 인식

* 확고한 사명 의식은 확고한 정체성으로부터 나온다.
->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세례 요한
-> 통렬한 회개 촉구, 강력한 영향력 행사
-> 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메시아로 여기기 시작하고, 그에게 메시아가 맞느냐고 물어봄
-> 이 때 만약 그가 그렇다고 말하거나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며 사람들에게 알아서 상상하게 만들었다면 사람들은 그를 메시아로 추앙하고 온갖 부귀영화와 권세가 보장되는 상황
-> 그러나 세례 요한은 단호히 아니다! 라고 말함
->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알았기 때문 (메시아를 예비하는 사람)

* 바울
-> 본문 1절에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 으로 소개
-> "종"을 의미한 헬라어 단어는 "노예"를 의미했다.
-> 이 당시의 노예는 요즘 세상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비참한 신분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생산수단으로 여겨졌으며 당나귀와 동급으로 취급받았다.
-> 당시의 이런 상황을 안다면 바울이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 바울의 세상적 배경
-> 당시 최고 학부를 수석 졸업, 로마 시민권자, 베냐민 지파, 바리새파
-> 요즘으로 치면 1% 최상류층에 해당
-> 예수님을 믿기 전, 그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부인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데 앞장 섬 (스데반의 순교에 가담)

* 명예욕의 함정
->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자랑하지 못해 안달이 났다.
-> 아래는 목사님이 목사 안수를 받으실 때 받으신 말씀이다.
-> 목사가 조심해야 할 세 가지 : 돈의 유혹, 여자의 유혹, 명예욕
-> 목사가 힘써야 할 한 가지 : 하루 8시간씩은 교회 일에 충실하라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매일 열심히 하는 것처럼)
-> 돈의 유혹, 여자의 유혹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목사님들은 대부분 알아서 조심한다.
-> 하지만 명예욕은 눈에 잘 안보이기 때문에 많은 목사님들이 이에 걸려 넘어진다.

* 세상적 직함에 따른 호칭과 그리스도인적 호칭
-> 우리 교회에는 박사, 의사, 교수들이 많아서 서로 부를 때 아무개 박사님, 교수님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주님과 관련된 호칭 (아무개 형제님, 자매님, 집사님, 권사님) 등으로 부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 주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세상 호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예수님의 소유, 예수님의 사람인가?" 이다.


2. 복음을 전하는 직분과 사명

* 행복한 사람
->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믿는 대상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사람이다.
-> 올림픽의 꽃, 마라톤의 유래 : 아테네와 페르시아의 전투에서 아테네가 승리함을 알리기 위해 42.195 km 를 뛰어서 소식을 알리고 죽은 전령
-> 그는 기쁜 소식을 한시라도 빨리 알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그렇게 뛰었다.
-> 우리는 주의 기쁜 소식(복음)을 통해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 복음과 여타 기쁜 소식들의 차이점
-> 본문 2절 : 그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
-> 도대체 복음이 무엇이길래, 특권 계층이었던 바울이 자신을 노예라고 지칭하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을까?
-> 아테네의 승리 소식 : 아테네 사람들에게는 기쁜 소식이었지만 페르시아 사람들에게는 비보
-> 주의 복음 : 인종, 민족, 국적을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이심을 인정하면 주님은 그 사람에게 영생과 구원을 주신다.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기쁜 소식)


3.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오늘날의 교회들

* 종교 이동(개종) 관련 리서치
-> 개종자의 65%가 기독교에서 타종교로 이동
-> 기독교의 이탈률은 최상위, 유입률은 최하위
-> 여론 조사 회사의 이유 분석 : 교회의 이미지가 나쁘기 때문
->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싫어하기 보다는 교회와 교인들을 싫어해서 기독교에 반감을 가진다.

* 마하트마 간디의 일화
-> 그는 크리스천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을 존경하였다. (산상수훈에서 감동받음)
-> 어느날 선교사들의 초청을 받아 그들에게 한 마디 함
-> "인도는 고질적인 카스트 제도 타파 등 근본적인 변화가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 안에서 차별을 두지 않는 기독교 정신이 필요하다."
-> "기독교 정신을 전파해 주십시오. 그러나 말로만 전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십시오."
-> 기독교도인 영국 사람들의 인도 수탈과 만행으로부터 인도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배웠을까?

* 교회와 기독교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
-> 교인들의 모습을 보시고 실망 많으셨지요.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보셨습니까? 그 분을 만나보시고 기독교에 대한 판단을 결정해주셨으면 합니다.
-> 예수님은 기독교의 전부입니다. 예수님을 빼면 아무 것도 남는 게 없습니다.
-> 식당을 가실 때, 종업원들의 서비스를 보고 식당을 결정하지는 않으시지요? 중요한 것은 음식 맛이니까요.
-> 식당의 서비스와 인테리어(교인들과 시설)는 부가 요소일 뿐,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예수님)입니다.
->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바울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싶습니다.
-> 바울은 당시 최상류층 출신에 예수님을 학대하던 자였으나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눈이 멀었다가 뜨는 경험을 하고 나서는 3년동안 구약 성서를 연구하며 자신이 만난 예수님과 구약의 메시아를 비교해보고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 부디 예수님을 만나보시고 이 길을 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시기를 바랍니다.


4. 맺는 이야기

* 말년에 폐암, 뇌암과 치매로 고통받으셨던 성도님 이야기
-> 특히 치매와 뇌암으로 인하여 그동안의 기억들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함
-> 이 분의 마지막 일기 : "하나님,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려도 하나님만은 잊지 않게 해주세요."
-> 그 일기를 쓰시고 열흘 후에 소천 받으심
-> 이 분은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것"으로 살기를 소망하였다.

* 한 번 사는 인생, 누구의 것으로,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가?
-> 예수님의 것,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앙돌이 트랙백 0 : 댓글 0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임수병 부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6 September 2009

설교 제목 : 아버지의 본심
설교 본문 : 예레미야 애가 3:29~33

* TV 드라마 "아가씨를 부탁해"
*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
-> 시골에 살던 노부부가 자식들을 만나러 서울에 상경.
-> 치매를 앓고 있던 어머니를 서울역 지하보도에서 잃어버린 자녀들은 어머니에 대해 아는 바가 너무 없어서 어머니를 찾지 못함 (아는건 이름과 나이밖에 없음)
-> 우리는 부모님의 본심을 모른 채 살고 있다.

*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과연 우리의 아버지인 하나님의 본심을 알고 있는가?


1. 고통 가운데 있던 예레미야
(하나님의 본심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고통을 노래함)

* 예레미야 애가 3장의 초반부는 그가 겪은 끝을 모를 좌절과 가슴을 찢는 고통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 정말 처절하고도 애끓는 묘사다.
-> 예레미야 애가 3:1~20
나는 여호와의 진노의 매로 고통을 겪은 사람이다. 빛이 아닌 어둠속에 나를 내몰아 다니게 하셨다. 진정 나를 대적해서 하루 종일 계속해서 나를 치고 또 치셨다. 내 살과 피부를 쇠약하게 하셨고 내 뼈들을 부러뜨리셨다. 쓰라림과 고통으로 나를 에워싸고 둘러싸셨다.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처럼 나를 어두운 곳에 머무르게 하셨다. 도망갈 수 없도록 나를 둘러싸고 내 사슬을 무겁게 하셨다. 내가 소리치고 부르짖어도 내 기도를 닫아버리셨다. 내 앞길에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을 막으시고 내 갈 길을 뒤틀리게 하셨다. 여호와는 나를 숨어 기다리는 곰과 같고 은밀한 곳에 숨어 있는 사자와 같으시다. 내 길을 잘못 들게 하시고 내 몸을 찢어서 나를 황폐하게 하셨다. 그분의 활을 당기시고 나를 화살의 과녁으로 세우셨다. 그분의 화살통의 화살이 내 심장을 뚫고 지나가게 하셨다. 내가 내 모든 백성의 조롱거리가 됐고 그들은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며 나를 놀려댔다. 그분은 나를 비통함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쓰라림으로 취하게 하셨다. 자갈로 내 이를 부러뜨리셨고 재로 나를 덮으셨다. 그분이 내 심령에서 평안을 빼앗으셨으니 내가 행복을 잊고 말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내 인내와 소망이 여호와로부터 사라져 버렸다." 내 고난과 내 방황, 비통함과 쓰라림을 기억하소서. 내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며 내 영혼이 내 안에서 낙심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21절부터 문체가 바뀐다.
-> 예레미야 애가 3:21~33
그러나 내가 이것을 생각해 내기에 오히려 내게 소망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인애하심이 끝이 없는 것은 그분의 긍휼하심이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의 신실하심이 큽니다. 내 영혼이 말한다. "여호와는 내 유산이시니 내가 주를 기다립니다." 그분을 기다리는 사람과 찾는 사람에게 여호와께서는 선하십니다. 여호와의 구원을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좋도다. 사람이 아직 젊을 때 멍에를 메는 것이 좋도다. 그가 홀로 조용히 앉아 있게 하여라. 이는 여호와께서 그 위에 멍에를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가 흙먼지 속에 겸손하게 하여라. 그러면 희망이 있을지 모른다. 자신을 치는 사람에게 뺨을 내밀어 그에게 수치로 가득 차게 하여라. 이는 주께서 영원히 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주께서 슬픔을 주시더라도 풍성한 인애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이다. 이는 주께서 사람의 자녀들에게 고난이나 슬픔 주시기를 즐겨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 22~23절 : 여호와의 인애하심이 끝이 없는 것은 그분의 긍휼하심이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의 신실하심이 큽니다.
-> 삶의 고난이 소망의 밑거름이 되었다

* 29절 : 그가 흙먼지 속에 겸손하게 하여라. 그러면 희망이 있을지 모른다.
-> 현실을 받아들여라. 삶을 긍정하라

* 30절 : 자신을 치는 사람에게 뺨을 내밀어 그에게 수치로 가득 차게 하여라.
-> 삶을 절대적으로 긍정하라 (그렇다고 "긍정의 힘" 이나 "잘되는 나" 같은 번영신앙을 말하는 건 아니다)
->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해보여도 하나님의 본심을 이해하면 가능하다.

* 33절 : 이는 주께서 영원히 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본심은 이렇다.

* 예화 : 이승복 어린이의 비극
-> 무고한 어린 생명의 처참한 죽음
-> 하지만 이승복 어린이 사건은 군사정권의 조작이라는 설이 사회 통념화 되어서 이승복 어린이의 죽음이 헛되게 됨
-> 그러나 몇년 전 이승복 어린이 사건은 역사에 실존했던 사건으로 확인되었다


2. 하나님의 본심을 오해한 사람들

* 1달란트를 받았던 종 (마태복음 25장)
-> 마태복음 25:24~25
그때 1달란트 받은 종이 와서 말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이 굳은 분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씨 뿌리지 않은 곳에서도 곡식을 모으시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저는 두려운 나머지 나가서 주인님의 돈을 땅에 감춰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 주인님의 것이 있습니다.'

* 포도원 품꾼 (마태복음 20장)
-> 마태복음 20:6~7
그리고 오후 5시쯤 다시 나가 보니 아직도 빈둥거리며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왜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서 빈둥거리고 있느냐?' 고 물었다. 그들은 '아무도 일자리를 주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주인이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도 내 포도원에 와서 일하라' 고 말했다.
-> 일찍부터 일한 품꾼들은 주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을 이해 못함
-> 오후 늦게까지 빈둥거리며 서 있는 사람들은 놀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라, 일을 시켜주는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기다리며 서있었던 것이다. 포도원 주인은 이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서 일자리를 준 것이다.

* "운수 좋은 날" 신드롬 (from 현진건 소설)
-> 일이 신기하게 잘 풀리면 하나님이 그 댓가로 뭔가를 뺏어갈 것만 같은 불안감
-> 하지만 주님은 "give and take" 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 뭔가 댓가를 치뤄야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오해하면 안된다.


3. 하나님의 본심을 이해한 사람들

* 노아 (창세기 6장)
-> 창세기 6:8
그러나 노아만은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But Noah found favor in the eyes of the Lord)
->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명령 (어마어마한 크기의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심) 에 순종함.
-> 주님의 본심을 알았기 때문에 가능했음.

* 모세 (출애굽기 32장)
-> 금송아지 사건
-> 출애굽기 32:9~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백성들을 보니 참으로 목이 곧은 백성들이다. 그러니 너는 이제 나를 두고 가거라. 저들 때문에 내 진노가 부글부글 끓는구나. 내가 저들을 진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고 나서야 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그 하나님 여호와께 빌며 말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왜 주의 백성들 때문에 노여워하십니까? 그들은 주께서 큰 능력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사람들이 아닙니까? 왜 이집트 사람들이 '그가 그들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쓸어버릴 생각으로 끌고 나갔구나' 하게 하시겠습니까? 주의 무서운 진노를 돌이키시고 주의 백성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말아 주십시오.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주께서 친히 주를 두고 그들에게 '내가 네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고 내가 그들에게 약속한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줄 것이니 이것이 그들의 영원한 기업이 될 것이다' 라고 맹세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자 여호와께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그 백성들에게 재앙을 내리려던 마음을 접으셨습니다.
-> *** 백성을 진멸하시려는 하나님의 분노 속에서도 모세는 그 안에 보이는 하나님의 눈물과 사랑을 보았다.

* 우리의 본심을 아시는 주님
-> 본심 : 원래 처음부터 꾸준히 갖고 있는 마음
-> 진심 : 어떤 순간에 마음속에 진정으로 가지고 있는 마음
-> 야곱과 에서의 일화 : 에서는 야곱을 용서했지만 그것은 본심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 구원의 확신이 때로는 흔들리는 이유는?
-> 우리의 본심과 진심이 같지 않기 때문

* 왜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나?
-> 베드로의 본심(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 "다른 사람은 다 주님을 버리더라도 나는 주님을 끝까지 따르겠습니다!")과 베드로가 처한 상황 그 당시의 진심(예수님에 연루되어 죽기 싫은 마음, "나는 예수를 모르오!") 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

*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진심을 보셨나? 아니면 베드로의 본심을 보셨나?
-> 본심을 보셨다.
-> 그렇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이 아무리 기도하다 잠들고 해도 본심을 아셨기 때문에 그들을 용서하셨다.
-> 이처럼 주님은 우리의 처음 고백(본심, "주님만을 붙잡고 가겠습니다" "주님만이 내 구주이십니다")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 부활하신 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를 세 번 물으심.
-> 이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은 "예 주여,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지난 날의 호언장담과는 다른 겸손하지만 확고한 대답)
-> 이러한 대답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후 밖에 나와 회한과 통탄의 눈물을 흘렸던 사건을 베드로는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


4. 주님의 본심

*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외로우셨다.
-> 아무도 주님의 본심을 알아주지 못했기 때문
-> 하늘을 향한 절규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 그러나 하나님도 예수님으로부터 얼굴을 돌리심...
(인간의 죄를 완전 대속하신 예수님은 그 순간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짐)

*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그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다.

* 우리에게 환란을 주시는 이유 -> 우리에게 장래의 소망을 주시기 위함 (천국 소망)

*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 에 반영된 우리 사회의 현실
-> 세상의 많은 자녀들은 엄마를 이용하기만 한다.
-> 외로울 때, 힘들고 지칠 때, 쉬고 싶을 때, 위로를 받기 위해 엄마를 찾는다.
-> 헌신적인 엄마일수록 이기적인 자녀를 만든다.
-> 소설 내용 중... "당신은 내게 죄였고, 당신은 내게 행복이었어."
-> *** 사실상 "엄마를 부탁해" 라는 제목은 "엄마를 잃어버린 나를 부탁해" 인 셈이다.

* 우리는 주님을 우리의 목적에 맞게 "이용" 했다.
-> "주여!", "아버지!" 하고 부르짖으면서 정작 아버지의 본심을 듣기 위한 노력은 했나?

* 주님의 본심에 귀 기울이자!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앙돌이 트랙백 0 : 댓글 0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이은수 목사님 주일 설교 요약

30 August 2009

설교 제목 : 하나님의 뜻을 이룬 침묵
설교 본문 : 마태복음 26:57 ~ 68

* 어느 부부 이야기 : 아내가 어느날 저녁 머리를 짧게 자르고 오자, 남편은 자기와 상의 없이 머리를 잘랐다고 비난한다.
그러자 화가 난 아내 왈, "당신은 언제 내 허락받고 대머리 되었어요?"

* 우리는 언어 속에서 살아간다 (하루에 2만~3만 마디)
-> 하이데거,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사람은 자신의 말로 자신의 얼굴을 보여준다."

* 그리스도인은 해야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 말을 해야 할 때, 침묵해야 할 때가 있다.


1. 난무하는 거짓 증언들

* 마태복음 26:59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께 대한 거짓 증거를 찾아내어 죽이려고 했습니다.
-> 공회 : 산헤드린 공회 (유대인의 최고 법정으로, 막강한 경찰권과 벌금형, 태형 등의 판결 행사)
-> 이들은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증거를 짜맞췄다.
-> 하지만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아래의 마가복음 구절 참조)
-> 마가복음 14:53~59
그들은 예수를 이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갔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 모두 모여들었습니다.
베드로는 멀찌감치 떨어져 예수를 따라가 대제사장 집 뜰에까지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경비병들 틈에 앉아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증거를 찾았지만 아무런 증거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 거짓 증거를 댔지만 그들의 증언이 서로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에 대해 이렇게 거짓으로 증언했습니다.
"우리는 저 사람이 '내가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헐고 손으로 짓지 않은 다른 성전을 3일 만에 세우겠다' 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한 증언도 서로 맞지 않았습니다.

* 책 "꿈을 이루어 주는 거짓말" : "언론에 대하여 최대한 비판적이 되어라"
-> 언론의 헤드라인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자극적으로 각색한다.

* 이 세상의 화려한 거짓말 뒤에는 거짓의 아비인 사탄이 있다.
-> 거짓말은 죄악으로 연결된다.
-> 거짓말, 거짓 증언은 들통날 수밖에 없다.

* 현장에서 보고 들은 사람들인데도 증언이 일치하지 않는 이유는?
-> 제대로 듣지 않았기 때문!
-> 설교를 들을 때도 어떤 사람들은 설교를 잘 들어놓고도 목사님이 이야기하지도 않은 것을 이야기 했다고 우기기도 한다.
-> 그러니 설교를 들을 때도 제대로 잘 들어야 한다.

* 성경을 읽을 때에도 제대로 읽어야 한다.
-> 자기 흥미를 끄는 부분만 읽어서는 안된다.

* "말씀의 홍수 속의 기갈"
-> 오늘날 하나님 말씀은 인터넷, TV, 책 등 정말 많은 곳에서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자신의 입맞에 맞는 말씀만 찾다 보니 (편식), 한 가지 관점에 고정된 시선을 가지게 됨.

* QT 는 주관적인 면이 강하다.
-> 물론 QT 는 꼭 해야 하지만, 자신의 입맞에 맞는 성경말씀만 찾아서 묵상하다 보면 하나님의 진리가 편향되고 왜곡될 수 있다.
-> 이와 같은 QT 의 한계를 보강하기 위해 성경 통독을 해야 한다.

* 우리는 일상생활의 언행에서도 우리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각색하는 일이 많다.
-> 기도 제목 : 우리가 왜곡과 각색 없이 올바른 진리를 말하게 하옵소서.


2. 침묵하시는 예수

* 예수님의 침묵
-> 거짓에 대한 온유한 항의
-> 1만 마디의 말보다 중요한 의미 가짐
-> 성경의 예언말씀 성취 (이사야 53:7)
그는 학대를 받고 괴롭힘을 당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을 깎이는 잠잠한 어미양처럼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 논리적 반박보다 상대방을 효과적으로 정죄.

* 필라델피아의 한 교회의 예
-> 교회가 부흥하고 교세가 확장되자, 이 교회에 신도들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다른 교회들은 이 교회를 근거없이 모함하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 그러자 교회 담임목사님은 이 무고한 비난들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기 보다는 침묵하고 하나님의 뜻에 맡기자고 교회 사람들과 함께 결의했다.
-> 이후 다른 교회의 비난은 점점 줄어들고 잠잠해졌다.

* 침묵하고 맡기면 하나님이 알아서 하신다.
-> 아무리 내가 객관적으로 옳다 해도, 나의 항변이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 내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일을 처리하는 순서가 잘못되어서 그런 것이다.
-> 먼저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억울함과 고통에 대해 낱낱이 아뢰는 것이 끝나기 전까지는 사람들 앞에서는 침묵해야 하는 것이다.

* 1만 마디의 아름답고 논리 정연한 웅변보다,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며 침묵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3. 말씀하시는 예수

* 마침내 예수께서 입을 여시고 말씀이 자신들의 모함에 맞아떨어지자 대제사장과 사람들은 "걸렸구나!" 하고 쾌재를 부르듯 반응한다.
-> 마태복음 26:64~66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네가 스스로 말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 앞으로는 인자가 권능의 보좌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볼 것이다."
그러자 대제사장은 자기 옷을 찢으며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소! 더 이상 무슨 증인이 필요하겠소? 보시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들은 "죽여 마땅합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 예수님의 죄명 : 신성 모독
-> 하지만 과연 신성 모독을 범한 사람은 누구인가?

*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입을 여셨다.
->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밝히기 위함.

* 목사님 일화 : 필라델피아에 다녀오시면서 speeding 으로 잡히심. 법정에 출두하셨을 때 재판관에게 변명을 해볼까 하다가, 마음 속에 "넌 목사다" 라는 말씀이 들림. 그래서 당당하게 "나는 목사입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못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하고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씀하심. 그러자 재판관은 미소를 지으며 목사님의 포인트를 삭제해주고 벌금 액수를 감면해줌.

* 원래 오늘의 설교 제목은 "진짜 신성모독" 이었음.
-> 고친 제목 : 하나님의 뜻을 이룬 침묵
-> 새벽 5시에 눈이 떠지셔서 원고를 다시 읽어보시게 됨.
-> 원래 원고의 초점 : 진짜 신성 모독을 한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대제사장 무리를 비난하는 데 초점)
-> 새로 고친 원고의 초점 : 불의에 용기있게 침묵으로 맞서신 예수님

* (다시 한 번 강조) 그리스도인은 해야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 말을 해야 할 때, 침묵해야 할 때가 있다.
-> 어떤 손해를 각오하더라도, 침묵할 때 침묵하고 진실을 말해야 할 때 진실을 말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앙돌이 트랙백 0 : 댓글 0

티스토리 툴바